업계 "기업 귀책 정도 반영한 심사체계 마련해야"
[기획인터뷰]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 개편 (끝) 종합
정부가 약가제도 개편과 맞물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인증기준을 강화하고 평가체계를 손질하는 한편 리베이트 관련 심사기준도 일부 정비했지만, 업계에서는 혁신 유인과 윤리성 확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실제 책임 정도를 반영하는 보다 정교한 인증심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혁신적 제약기업 인증기준 개편안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인증절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개발비 비율을 상향하고 리베이트 심사기준을 정비하는 동시에 평가항목을 간소화해 혁신 역량 중심으로 제도를 재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혁신형 제약기업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비 비율을 2%포인트 상향하되 3년의 유예기간을 둔다. 또 cGMP와 EU GMP 인증기업은 인증 연장 시 최근 3년 이내 작성된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연구개발 비율 각 2% 일괄 상향...배점 개편으로 객관성 강화
리베이트 관련 인증기준도 일부 조정된다. 인증 또는 연장 심사 시점을 기준으로 5년 이전에 종료된 위반행위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우선 인증을 부여한 뒤 기각 판결이나 재결이 내려지면 1년 이내 인증을 취소하도록 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소송으로 과거 위반행위가 뒤늦게 인증 취소 사유가 되는 문제를 개선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인증심사 체계도 대폭 개편된다. 총점은 기존 120점에서 100점으로 조정되고 평가항목은 25개에서 17개로 축소된다. 연구개발 투자 등 핵심 항목은 정량평가를 강화하고 사회적 책임활동 항목을 신설했다. 제휴·협력활동과 기업경영 투명성의 배점은 높인 반면 연구인력과 연구시설, 연구개발 전략 등의 비중은 조정했다.
아울러 인증 최저점수(65점)를 고시하고 탈락 기업에는 미인증 사유를 명시하도록 해 심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국회 "약가제도 개편 연계...산업 전환 계기 삼아야"
정치권은 이번 개편을 약가제도 개편과 연계한 산업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최근 뉴스더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니라 국내 제약산업을 제네릭 중심에서 연구개발 중심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며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산업구조 개편의 핵심 정책수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또 R&D의 질을 평가하는 정성평가를 확대하고,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육성하는 사다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위탁생동과 CSO 등 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조원준 정책실장도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기업 책임에 비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가기준과 배점을 공개하고 최저점수를 명시한 것은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라면서도 "기업이 교육과 내부통제, 모니터링 등 실질적인 준법경영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런 부분도 함께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 범위 놓고 보완 요구...기업 책임범위 추가 논의 필요
업계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준법경영을 함께 평가하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책임 범위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는 "행정처분의 원인이 된 행위와 관련해 법인이나 대표자가 상당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동일하게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은 48개사이며, 이 가운데 21개 기업에서 약 7240명의 영업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이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백 명의 영업사원 개인의 일탈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HK이노엔 전략지원실 김기호 전무는 "연구개발 투자와 준법경영을 함께 평가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기업이 상당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했음에도 직원 개인의 일탈만으로 인증을 잃는 구조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내부통제 수준과 실제 준법경영 노력, 재발방지 시스템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률적 판단기준도 쟁점...비례원칙 등 심사 반영 필요
법조계에서는 인증 취소 과정에서 행정청의 재량심사가 보다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세종 김현욱 변호사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소는 법률상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는 사안인 만큼 약사법상 행정처분만을 근거로 기계적으로 인증을 취소하기보다 기업의 귀책 정도와 준법경영 노력, 형사책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기본법상 비례원칙과 이익형량 원칙을 반영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제약계 관계자는 "정부가 혁신형 제약기업에 요구하는 수준이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준법경영까지 확대되는 방향인 만큼 업계도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연구개발 투자 확대라는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고 예측 가능한 심사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계 관계자는 "혁신형 인증은 이제 약가 우대와 연구개발 지원, 산업 육성정책이 모두 연결된 핵심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며 "기업의 내부통제와 CP 운영 노력이 제대로 평가되는 구조가 마련될 때 혁신과 준법경영을 함께 촉진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