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과 괴리…환자 모집·다국가 임상 유치 걸림돌”
국내 임상시험 제도가 글로벌 기준과 비교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병원 중심의 임상시험 구조와 까다로운 실시기관 지정제도가 환자 모집과 다국가 임상 유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선 방안으로는 의료기관별 역량에 맞춘 유연한 지정 체계와 행정 절차 간소화가 거론됐다.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공개한 ‘한국 바이오메디칼 산업의 육성 및 글로벌 진출에 대한 정책 연구’에서 연구진은 현행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제도가 국내 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위원회 의뢰로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이 수행했으며, 사업책임자는 우정훈 산학협력 교수였다.
KGCP 도입 이후 강화된 지정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제도는 의약품 개발과 임상시험 중요성이 커지면서 단계적으로 강화돼 왔다. 초기에는 임상시험 관리 체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아 시험기관의 전문성이나 윤리 기준이 미흡하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5년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 기준(KGCP)’이 도입됐다. 이후 임상시험 기관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기관 지정제도가 마련됐다.
2016년에는 임상시험 수행 기관 범위가 대학병원 외 CRO(임상시험수탁기관)와 전문병원까지 확대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국제 수준의 임상시험 수행 역량 확보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현재 제도가 글로벌 임상 환경 변화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은 별도의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제도를 두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반면, 국내는 지정 절차와 요건이 복잡해 임상 수행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해외에서는 의료기관 자체 IRB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병원에서 임상시험이 가능하다”며 “행정 과정이 비교적 효율적이어서 환자 참여율이 높고 환자 모집도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임상시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정제도가 국제 기준(ICH-GCP)과 차이가 있어 다국가 임상 유치가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쏠림 완화해야 환자 접근성 개선”
특히 연구진은 국내 임상시험이 일부 상급종합병원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고 봤다. 주요 대학병원에 임상시험이 몰리면서 동일 환자군을 두고 기관 간 경쟁이 벌어지고, 환자 모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방이나 중소 의료기관 환자의 경우 임상시험 참여 기회 자체가 제한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연구진은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한 환자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점병원과 전문병원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료기관 규모와 임상 역량에 따라 단계별·차등형 지정체계를 도입하고, 위험도가 낮은 임상시험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 중앙IRB 활용 확대와 행정 절차 간소화 필요성도 제기했다. 연구진은 현재 기관별로 반복되는 심사 절차가 임상시험 개시 지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다기관 임상시험의 경우 통합 심사 체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상시험 코디네이터(CRC)와 데이터 관리 인력 등 전문인력 양성·지원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디지털 치료제·AI 의료기기 임상 확대 기대
디지털 헬스와 AI 의료기기,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는 임상 규제 유연성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진은 “병원과 기업의 행정 부담이 감소하면 혁신 의료기기와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한 산학연 협력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 초기 임상 근거와 실제 사용 데이터(RWE)가 빠르게 축적될 경우 미국 FDA와 유럽 CE 인증 대응 등 글로벌 인허가 전략 수립에도 유리한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궁극적으로 임상시험 제도 개선이 다국가 임상 참여 확대와 글로벌 제약사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환자 모집 속도와 임상 수행 효율성이 개선되면 국내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공동개발과 기술이전, 상업화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