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요구 닿지 않는 국회 청원제도, 이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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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자 요구 닿지 않는 국회 청원제도, 이대로 둘 것인가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6.04.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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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직접 민주주의의 통로’라는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환자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도는 그 절박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다.

5만명이라는 문턱을 넘어서도 국회 심사 단계에서 멈춰 서고,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는 청원 게시 후 30일 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상임위원회로 회부돼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취지와 거리가 멀다. 법적으로는 90일 내 심사를 마쳐야 하지만, 기한 연장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처리 시한이 없는 구조로 변질됐다. 더 큰 문제는 청원심사소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넘어간 청원조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장기간 계류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폰히펠-린다우(VHL) 질환 치료제 ‘웰리렉정(성분명 벨주티판)’ 급여 등재 청원은 2024년 7월 상임위 소위에 회부된 이후 1년 넘게 단 한 차례도 심사되지 않았다. 해당 치료제는 허가 이후 거의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비급여 상태에 머물러 있다.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문제는 그대로인데, 청원제도는 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현장에서는 “국민동의청원보다 국회의원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 참여를 통해 정책과 입법에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공식 절차를 거친 청원보다 개별 접촉이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설령 모든 절차를 통과하더라도 한계는 남는다. 본회의에서 채택된 청원조차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에 그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없다면, 국민의 의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결국 환자들은 다시 개별 협상과 행정 절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고, 치료 기회는 그만큼 지연된다.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도 전반에 걸친 실질적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청원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자동으로 청원심사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도록 해 ‘계류 상태’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상임위와 소위의 심사 기한을 명확히 설정하고, 기한 내 심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유 공개와 함께 후속 절차가 자동 진행되도록 하는 장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청원에 대해 공식적인 검토 결과와 입장을 의무적으로 회신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주요 청원에 대해서는 공청회나 전문가 논의를 연계해 정책 검토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서류 심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로 확장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본회의에서 채택된 청원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이행 점검 체계를 도입해 권고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기댈 곳 없는 절박한 환자들에게 국민동의청원은 구원의 길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형식만 유지된 채 실질적 작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다른 '희망고문' 껍데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청원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환자들의 절박한 요구가 더 이상 제도 안에서 멈추지 않도록, 국민동의청원을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통로로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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