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매뉴얼 마련이 실질적 시행일”
[약가제도 개편안(6)=추진 과제(하)]
보건복지부가 28일 건정심에 보고한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다국적 제약계와 환자단체는 “정책 방향은 옳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세부 설계와 절차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개편안 중 가장 주목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3개월 등재’ 추진과 관련해, 현재 단계에서 이를 뒷받침할 행정·평가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우려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약가등재까지 평균 18개월 이상 소요되는 기존 시스템을 단숨에 3개월로 줄이기 위해서는 평가 절차를 병렬화하고, 제출자료·검토자료를 간소화하며, 기존 선별등재 구조를 다변화하는 등의 실무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업계는 “정부가 3개월 등재라는 목표를 제시한 것은 의미 있지만, 정작 3개월 내 등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할지 설명되지 않았다”며 “문구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행정 장치”라고 지적한다.
경제성평가(경평) 제도의 고도화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논점이 제기된다. 정부는 신속등재와 후조정을 결합해 비용효과성 평가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경평이 생략되는 약의 범위, 평가 대신 적용할 기준 가격, 국제비교 가격 선정 방식 등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다국적 제약업계 관계자는 “경평 생략제를 활용한다면 어느 국가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지 정부가 기준을 제시해야 기업이 실제로 협상에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평 고도화’가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가격 책정 구조에 반영돼야 한다는 요구다.
약가 유연계약제(이중약가) 또한 제도의 핵심은 ‘환급 여부’가 아니라 ‘청구 시스템을 통한 자동 처리’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환급 방식에서는 공단의 정산업무 부담, 환자 환급 지연, VAT 처리 문제 등이 반복됐지만, 청구 구조로 전환되면 이러한 부담이 크게 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비밀약가 범위, 환자 부담 발생 여부, 재정 안정성 등을 고려한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업계는 “청구 방식으로 전환하는 절차적 혁신은 바람직하나, 제도 시행 과정에서 환자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개편안에서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복지부가 단독으로 제안을 만들고 발표했으며, 실제 제도 운영 주체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설계에 깊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이다. 업계는 이로 인해 향후 세부 설계 단계에서 복지부와 심평원의 입장 차이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결국 제도 취지가 변형되거나 시행이 지연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 관계자는 “신속등재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복지부가 기조를 설정하고 심평원은 실무·평가·기술·자료 기준을 구체화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협의 없이 복지부 단독으로 제도가 발표된 상태여서 준비되지 않은 심평원이 뒤늦게 설계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 의약품의 공급 안정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약을 어떤 기준으로 필수약으로 지정하는지, 공급 중단 시 어떤 대체 제도를 가동할지, 원료 확보의 안정성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 실행 프로토콜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개편안에는 원칙은 제시돼 있지만 공급 안정의 운영 체계는 여전히 구체화돼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 전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복지부·심평원·공단·업계가 참여하는 실무 협의체를 상시 운영하고, 제도 시행 전까지 단계별로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공식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정책이 ‘발표된 시점’이 아니라,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법이 명문화되는 시점부터 효력이 생긴다는 관점에 따른 것이다.
결국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은 “신약 접근성 향상”이라는 정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선언된 정책 방향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설계 역량이 성공 여부를 좌우할 전망이다.
업계와 환자단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구호가 아닌 시스템, 약속이 아닌 실행”이라는 점이다. 정책이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 과제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보완되고 구체화되느냐에 따라, 이번 개편안이 환자와 산업이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로 이어질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