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신규 지정된 의약품은 소아, 암환자 등에게 필수적으로 사용되나 공급이 불안정해 정부 지원이 필요한 의약품(이다)."
10개 부처 소속 고위 공무원으로 구성된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1월 29일 유방암치료제 풀베스트란트(오리지널 파슬로덱스주)를 포함한 17개 성분 약제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새로 지정하면서 이 같이 설명했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언급돼 있지만 국가필수의약품은 '질병 관리, 방사능 방재 등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으로 범부처 협의를 통해 지정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그런데 공급이 불안정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던 신규 지정 국가필수의약품 풀베스트란트 성분 오리지널 제품의 공급중단 우려가 이로부터 불과 8개월만에 불거졌는데, 발원지가 안정공급협의회에 참여하는 주요부처 중 하나인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 위원회의 결정이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관심있게 지켜본 독자들은 잘 아는 사안이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풀베스트란트 오리지널 제품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파슬로덱스. 이 약제는 특허가 만료돼 이른바 퍼스트 제네릭이 급여목록에 진입하면서 보험약가가 30% 인하됐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8월1일부터는 종전가격의 거의 반값까지 낮아지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보험의약품에 적용하는 '제네릭 등재 연계 오리지널 약가인하'와 '약가가산', 두 가지 제도가 적용된 결과였다. 공급중단 우려는 왜 생겼을까.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최초 제네릭 등재로 파슬로덱스 보험약가가 30% 인하되는 건 감내한 듯 하다. 당시 약가인하 처분에 불복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걸 감안한 추론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산기간이 종료되면서 보험약가가 23.5% 더 낮아질 위기에 처하자 공급중단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국가들이 다른 나라의 공적 보험가격을 참조해 약가결정에 반영하는 '글로벌 약가 참조제도'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본사가 추가적인 약가인하는 감내하기 어렵다는 사인을 한국지사에 보낸 후폭풍이지 않을까 추측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사안은 특허기간 중 높은(?) 가격으로 한국에 제품을 잘 팔아온 외국계 제약사가 약가가 떨어지자 한국시장 철수를 고민한 그림이다. 파슬로덱스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항암제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부도덕한 자본 논리로 비춰진다. 물론 급여목록에는 이 약제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두 개의 제네릭 제품이 있으니 덮어놓고 무책임이나 부도덕을 따질 이유가 없기는 하다.
그런데 파슬로덱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논란거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약가가산기간을 1년씩 두번, 최대 2년까지 더 늘릴 수 있는 가산제도를 활용해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만약 이 요청이 수용돼 가산기간이 더 연장됐다면 아마도 이 논란은 가산기간이 최종 종료되는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미뤄졌을 것이다. 또 그 사이 다른 제도적 변화가 뒤따른다면 논란은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평위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7월 초중순부터 공급중단 우려가 흘러나왔고, 정은경 복지부장관 인사청문회 서면질의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과, 국회는 이구동성 '정부 스스로 시장기능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약제로 판단해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 놓고 (가산기간 연장을 거부함으로써) 공급 불안 요소를 또한 스스로 만들었다'고 볼멘소리를 내놓거나 목소리를 높였다.
약평위가 어떤 논리로 가산기간연장을 수용하지 않았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추론되는 건 이미 한 차례 기간이 연장돼 3년간 약가가산의 혜택을 받았고, 심의 당시 급여목록에 파슬로덱스를 대신할 수 있는 제네릭 2개 품목이 등재돼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다.
파슬로덱스 이슈가 뉴스더보이스 [편집주의 눈]의 시선을 뒤늦게 잡은 건 이 지점에서 '왜?'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우선 파슬로덱스가 어떤 의약품인지부터 보자. 이 약제는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CDK4/6 억제제'와 함께 쓰도록 돼 있다.
'CDK4/6 억제제'는 암세포 분화 촉진에 관여하는 사이클린 의존성 인산화효소(CDK) 4와 6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불리는 데, 최근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혁신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는 입랜스(팔보시클립), 키스칼리(리보시클립), 버제니오(아베마시클립)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한마디로 파슬로덱스, 성분명으로는 풀베스트란트는 CDK와 관련된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약제'인 것이다.
다음은 통상의 진료현장의 모습이다. 항암제는 제네릭이 나와도 오리지널을 대체하는 게 매우 제한적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네릭 업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의사와 암환자는 오리지널을 제네릭으로 바꿔 쓰는데 매우 민감하다. 아니 꺼린다.
그래서 대개는 제네릭이 출시되더라도 해당 성분의 오리지널 의약품 처방 점유율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게 현실이다. 풀베스트란트 성분 역시 첫번째 제네릭이 출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오리지널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Why'라는 의문사가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행 약가가산제도는 가산기간 3년이 경과한 약제도 제약사가 안정적 공급 등을 이유로 가산기간 연장을 원하는 경우 1년 마다 약평위 의견을 들어 2년 한도 내에서 가산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안정적 공급 대상은 파슬로덱스가 될 수도 있고, 풀베스트란트 성분 전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약가가 더 떨어지면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호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풀베스트란트 성분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약제의 퇴장이라는 점에서 성분 자체에 대한 수급 불안정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이슈다.
그런데도 약평위가 가산연장을 수용하지 않을 걸 보면, 파슬로덱스가 없어도 풀베스트란트 성분 전체의 수급 불안정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약제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최근 제네릭 2개가 약제목록에 진입해 있는데도 3년에 더 해, 가산기간을 1년 더 연장한 펠루비프로펜 제제 사례가 있었던 걸 감안하면 왜 풀베스트란트 제제는 이 게 안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물론 가산기간 연장에 대해 오리지널사와 제네릭 사간 입장 차이가 있어서 이런 결정이 났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는 '약가'보다는 '공급' 이슈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입장 차이가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면 이 또한 논란거리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파슬로덱스 뿐 아니라 퍼스트 제네릭인 보령의 풀베트주도 국내 생산이 아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완제수입품이어서 해외 상황에 따른 수급 불안정은 잠재돼 있다. 국내 생산이 이뤄지는 두번째 제네릭인 한국코러스의 엘브라칸주가 약제목록에 등재된 건 수급 불안정 해소 차원에서는 매우 다행 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데일리팜이나 데일리메디와 같은 의약전문언론 보도를 보면 코러스는 최근 당좌거래가 정지되는 등 경영상의 위기를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지금은 회사의 경영상의 문제가 엘브라칸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점검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뉴스더보이스는 엘브라칸주가 원활히 생산돼 공급되고 있는 지 취재하려고 했지만 담당자의 여름휴가 등으로 아직 명확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항암제의 특성이 감안되지 않은 제도의 '부실' 측면도 있다. 복지부는 불법 리베이트와 연루된 약제에 급여정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해당 약제의 주된 적응증이 생명/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항목을 예외적으로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사유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이 예외사유는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급여정지 이슈가 불거지면서 만들어졌고, 당시 글리벡은 제네릭이 20개가 넘게 있었지만 급여정지를 면할 수 있었다.
복지부는 리베이트 제도에서는 이처럼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암제와 같은 약제에는 환자 안전을 위해 특별한 예외를 두고 있는데도, 가산기간 연장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보험의약품 제도 간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이자, 가산제도의 '부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슬로덱스 가산기간연장 요청 거부에 따른 약가인하 처분은 현재 아스트라제네카 측이 소송을 제기해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일단 해당 처분의 효력을 잠정 정지시켰고, 이달 말경 정식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정식 인용한다면 파슬로덱스 공급중단 우려는 본안소송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부분은 왜 약평위가 공급 불안정 우려로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신규 지정된 풀베스트란트 성분 제제의 임상 현장에서의 지위와 성분 내 파슬로덱스의 압도적인 점유율, 가산제도 운영에 있어서 생명과 직결된 약제에 대한 고려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아 '사건' 또는 '이슈화'를 자초했나 하는 점이다.
이제라도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이 이 사안을 사법부의 판단에만 맡기지 말고 뉴스더보이스 [편집자의 눈]의 시선에 들어온 제반 상황을 고려해 재논의할 여지가 없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계적인 제도 운영'보다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