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보공단 약평위 참여가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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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건보공단 약평위 참여가 능사인가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3.03.13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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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이 오는 9월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제9기 위원 재구성을 앞두고 이른바 '공단티오'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보험의약품 등재제도가 급여평가와 협상으로 이원화돼 있는 현 구조를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건보공단 고유업무인 가격 등의 협상과 사후관리만 잘 하면 되는게 아닐까?

건보공단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7일 전문기자협의회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약평위 참여 필요성을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심사평가원 측의 '업무적 비협조'를 문제 삼았다.

건보공단은 지금도 약평위에 '옵서버(observer)'로 참여하고 있다. 말 그대로 특별히 출석이 허용돼 있지만 의결권이나 발의권은 물론이고 발언권도 없다.  

그래도 급여평가 진행 상황은 파악 가능하다. 하지만 건보공단 측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이 상임이사는 "약평위가 끝나야 평가관련 자료를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협상에 소요되는 기간, 행정적인 업무가 더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또 "약가조정 약제 등의 경우 (조정) 신청가격이 상당히 터무니 없는데도 아무런 검토절차 없이 그냥 넘어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건보공단 단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해야 되는 행정적 부담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안한 해법이 건보공단의 약평위 의사결정 구조 참여였다. 

이 상임이사는 "약평위는 전문평가위원회 중 하나다. 행위전문평가위원회나 치료재료전문위원회는 건보공단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보험자로서 의견을 내는데 약평위에서만 배제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니까 (올라온 안건이) 불합리한 측면이 발견되더라도 건정심 단계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면서 "건보공단이 약평위에 참여하면 이런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심사평가원 측의 '업무 비협조'를 건보공단 측이 문제삼아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협상제도가 도입된 초기부터 제기돼 왔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이렇게 불만이 누적돼 왔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상임이사가 오죽했으면 신년기자간담회에서 목소리를 높였겠는가.

그런데 건보공단이 약평위에 참여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능사'인지 의구심도 든다. 

건보공단은 보험자로서 제약사와 신규 등재약제에 대한 상한금액과 예상청구금액, 위험분담계약 조건 등을 협상하는 당사자다. 약평위 추천기관에서 건보공단을 제외시킨 건 협상·계약 당사자 일방이 급여평가 의사결정구조에도 참여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건보공단이 다시 약평위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간다면, 등재기간만 더 지연되는 이원구조를 일원구조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의료행위전문평가위나 치재위에는 건보공단이 참여하는데 약평위만 빠졌다는 것도 적절한 지적은 되지 못한다. 의료행위나 치재위는 포지티스 시스템(선별목록제)이 적용되고 있는 약제와 달리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건보공단 가격 협상절차가 없다. 전문평가위에서 사실상 가격이 정해지고 건정심에서 확정되는 구조다. 때문에 약평위와 타 전문평가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건보공단 참여여부를 따지는 건 억지일 수 있다.

정부와 보험당국(건보공단, 심사평가원)은 최근 초고가의약품이 속속 급여권에 진입하면서 평가체계와 사후관리, 협상제도를 좀 더 촘촘히, 또 고도화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각자 자기가 맡은 고유영역에서 더 세련되고 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건보공단의 약평위 참여논란이 불거진 건 난센스와 다르지 않다. 

정부와 보험당국이 당장 시급히 할 일은 보험약제 업무를 수행하는 양 기관 간 유기적인 업무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더 고도화하는게 아닐까. 손 놓고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보건복지부부터 반성하고 해법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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