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학회, HBV DNA 기반 새 치료 알고리즘 제시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간암 발생률 및 사망률에서 압도적인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간암의 가장 핵심 원인인 만성 B형 간염의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이정표가 제시됐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성 B형 간염 치료의 새로운 국제적 흐름을 짚어보고 국내 환자들의 간암 예방을 위한 최신 치료 지침을 공유하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2026 간염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한간학회 임영석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과 김기애 간행위원회 간사(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연자로 참여해, 최근 개정된 ‘2026 만성 B형 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의 임상적 의의와 보건의료적 과제를 상세히 밝혔다. 이번 개정은 기존 치료 장벽을 허물고 '간암 예방을 위한 선제적 조기 치료'로의 대전환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4050 사망 원인 1위 ‘간암’…“발생 자체를 막는 2차 예방이 핵심”
첫 번째 세션의 발표를 맡은 대한간학회 임영석 이사장은 국내 B형 간염의 심각한 질환 부담과 조기 치료의 당위성을 지표로 증명했다.
임 이사장은 “간암은 다른 암종과 달리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40~50대 중년층에서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해 국가적 생산성 손실이 극심한 치명적인 질환”이라며, “간암은 일단 발병하면 5년 생존율이 40%, 10년 생존율은 25%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재발하는 ‘연속성 질환’이기 때문에, 암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항바이러스제를 조기에 투여해 아예 암 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2차 예방’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임 이사장은 현재 국내 보건의료 체계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B형 간염 환자 진단율은 85%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치료율은 겨우 22% 수준에 머물러 선진국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며 “실제 국내 간암 환자의 64%가 간암으로 확진받기 전까지 B형 간염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진작 약을 썼으면 그 암에 안 걸릴 수도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한 "간암 발생 및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 기준 확대가 필수적이지만, 이는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므로 학계의 객관적인 임상 연구 근거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다행히 최근 전 세계 B형 간염 분야를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임상 연구들이 국내에서 다수 도출되었으며, 학회는 이러한 과학적 백업 근거를 바탕으로 향후 정부와의 실질적인 정책 및 급여 기준 변화를 이끌어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모호했던 ‘회색지대’ 완전 퇴출…바이러스 수치로만 직관적 진단
두 번째 세션에서는 대한간학회 간행위원회 김기애 간사가 가이드라인 개정의 핵심인 ‘바이러스 역가(수치) 기반 자연 경과 분류 체계’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기존 진료 지침은 바이러스 수치(HBV DNA)와 간 효소 수치(ALT)를 동시에 만족해야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는 체내에서 활발히 증식하고 있으나 간 수치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치료 대상에서 제외돼 방치되는 이른바 ‘회색지대(불확정기)’ 환자가 전체 환자의 30~40%에 달했다.
김 교수는 “임상 데이터와 조직검사 결과를 정밀 분석한 결과, 간 효소 수치(ALT)는 간 내부의 실질적인 염증이나 섬유화 진행 상태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라며, “실제 ALT 수치가 정상인 환자들의 조직을 검사했을 때 이미 18%에서 간 섬유화가, 34%에서 중등도 이상의 간 내 염증이 진행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한간학회는 이번 개정안에서 변동성이 심한 ALT 기준을 삭제하고,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한 지표인 HBV DNA(바이러스 수치)만을 기준으로 하는 4단계 알고리즘을 전격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의료진과 환자를 혼란스럽게 했던 회색지대를 소멸시키고, 진단 즉시 치료로 직결되는 진료 체계를 완성했다.
간암 위험 극대화되는 ‘중등도 바이러스 혈증’...“즉각 치료 권고”
특히 이번 가이드라인이 지정한 핵심 조기 치료 대상은 ‘중등도 바이러스 혈증 환자(HBV DNA 2,000 ~ 10^8 IU/mL)’다.
연구 결과,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아주 높은 고바이러스 상태보다, 체내 면역 반응과 바이러스가 애매하게 싸우고 있는 ‘중등도 상태’일 때 간암 발생 위험이 포물선 형태로 급격히 치솟아 최고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회는 이 단계의 환자들에게 지체 없는 즉각적인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권고(Class I)했다.
아울러 치료 약제 선택에 있어서는 현재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1차 약제들(테노포비어 TAF, 테노포비어 TDF, 엔테카비어, 베시포비어 등) 모두 장기 내성 우려가 없고 바이러스 억제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개별 환자의 연령과 골대사 질환, 신장 기능 점수 및 임신 여부 등 장기 복용 시의 안전성 프로파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 맞춤형 약제를 선택할 것을 권장했다.
“약값 아끼려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급여 확대 촉구
대한간학회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임상적 성공과 국내 간암 발생률 감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이고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 기준 개정이 유일한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치료 대상이 확대되면 단기적으로는 항바이러스제 처방에 따른 건보 재정 지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나, 장기적인 보건경제학적 관점에서의 비용 효과성은 압도적이라는 분석이다. 중년층 환자들이 간암으로 이행되어 발생하는 고액의 중증 항암 치료비, 간이식 비용, 그리고 조기 사망으로 인한 국가 경제적 생산성 손실을 감안하면 초기 약제 비용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학회 연구진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이번 개정 지침을 기준으로 급여가 확대돼 적극적인 조기 치료가 실현될 경우 향후 15년간 국내에서 약 4만 3,000건의 간암 발생을 예방하고, 3만 7,000명의 간 질환 사망자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임영석 이사장은 “이번 2026 가이드라인은 단순히 학술적 지침을 넘어 대한민국 땅에서 간암을 종식시키기 위한 실천적 선언”이라며 “정부가 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신속히 완화하여, 수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고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의 보건 안보와 생산성이 향상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바이러스 질환 사업부 권선희 부사장은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은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질환 진행 위험을 보다 정교하게 평가하고 치료 전략을 재정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길리어드는 WHO의 2030년 바이러스 간염 퇴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혁신 치료제 공급뿐 아니라 임상 연구 지원과 질환 인식 제고 활동 등을 통해 국내 만성 B형 간염 환자들의 치료 환경 개선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