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전수조사·국회 의료법 개정·병원 자체조사 요구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국내 의사 면허가 없는 외국 의료인 연수생들이 지도전문의 입회 없이 장시간 단독으로 수술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환자단체가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정부·국회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수술실은 외국 의료인 연수 장소이기 이전에 환자의 생명과 안전, 권리가 보호돼야 할 공간”이라며 “경찰은 세브란스병원 무면허 의료행위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고, 정부와 국회는 외국 의료인 연수와 동시수술 관리체계를 즉각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회에 따르면 이번 의혹은 지난 12일 연합뉴스TV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보도에서는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국내 의사 면허가 없는 외국 의료인 연수생들이 연수지도전문의 입회 없이 장시간 단독으로 수술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제기됐다. 현재 경찰은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고, 최근 압수수색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회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단순한 병원 내부 관리 부실을 넘어 환자의 생명과 안전,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중대한 위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환자단체는 수술 동의의 본질을 문제 삼았다. 환자는 국내 의사 면허를 가진 특정 의사를 믿고 자신의 몸과 생명을 맡기며 수술 동의서에 서명한다. 그러나 실제 수술 과정에서 환자가 선택한 집도의가 어느 범위까지 수술을 책임졌는지, 국내 면허가 없는 외국 의료인 연수생이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 연수지도전문의가 현장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환자의 동의는 온전한 동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이번 사안이 그동안 제기해 온 유령수술·대리수술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전신마취로 의식을 잃은 환자가 누가 자신을 수술하는지 알 수 없는 수술실의 밀실 구조가 반복적으로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이번 의혹은 수술실 CCTV가 의료진 감시용이 아니라 유령수술, 대리수술, 설명과 다른 수술 참여를 예방하고 사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환자 안전장치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연수는 연수일 뿐”…환자 고지·동의 없는 참여는 문제
연합회는 외국 의료인 연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내 우수 의료기술을 해외에 전수하는 것은 국제 보건의료 협력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연수는 어디까지나 연수이며, 국내 의사 면허가 없는 외국 의사가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하려면 법과 제도가 정한 요건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연합회는 “승인된 범위 안에서, 연수지도전문의의 실질적인 입회와 감독 아래, 환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명확한 동의를 얻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수술 관행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한 명의 집도의가 같은 시간대 여러 수술실을 오가는 동시수술은 그 자체로 모두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환자가 집도의의 실제 참여 범위와 외국 의료인 연수생 등 다른 인력의 참여 여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동의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연수지도전문의가 여러 수술실을 오가는 과정에서 연수생이나 다른 의료인력이 사실상 단독으로 주요 수술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위험한 행위”라며 “환자의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며, 유령수술·대리수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경찰 수사·복지부 전수조사·국회 입법 보완 촉구
연합회는 경찰에 대해 이번 의혹을 병원 내부 규정 위반 정도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수술기록지, 마취기록지, 수술실 출입기록, CCTV 영상, 전자의무기록, 연수생 승인서류, 수술동의서, 집도의 배정표와 실제 수술 참여 기록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무면허 의료행위 여부뿐 아니라 환자 사전 고지 여부, 연수지도전문의의 실질적 입회 여부, 동시수술 과정의 지도·감독 공백, 환자안전 위협 정황까지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에는 대형병원 외국 의료인 연수 실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수사 결과만 기다리지 말고 국내 대형병원들이 외국 의료인 연수생 승인 범위, 연수지도전문의 입회 여부, 환자 고지 절차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즉각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의료법 개정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동시수술 제한 원칙 명시, 예외 허용 시 사전 고지와 환자 동의 의무화, 집도의 실제 참여 기준 명문화, 외국 의료인·연수생 수술 참여 시 신분과 면허 발급 국가, 참여 범위, 지도전문의 책임 설명 및 별도 서면동의 의무화를 제안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나 무자격자 대리수술 적발 시 의료기관과 책임 의료진에 대한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에도 자체 조사와 공개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외국 의료인 연수생의 수술 참여 현황, 연수지도전문의 입회 여부, 환자 고지 및 동의 절차, 동시수술 운영 실태를 자체 조사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 수술을 받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개별적으로 고지하고 필요한 설명과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환자는 수술실 안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라며 “전신마취로 의식을 잃은 환자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환자가 모르는 수술, 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수술, 환자가 선택하지 않은 의사에게 생명을 맡겨야 하는 구조는 환자중심 의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병원의 편의나 관행, 그 어떤 연수 성과도 환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앞설 수 없다”며 “경찰 수사와 보건복지부 조사, 국회의 후속 조치를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