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뺑뺑이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왜 우리는 못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합니다.”
2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산모·신생아 응급진료체계 개선 TF’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응급의료체계 붕괴 우려를 둘러싼 현장 목소리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지역 모자의료 인프라 약화와 신생아중환자실(NICU) 인력 부족, 장거리 이송 증가, 의료진 사법 리스크 등을 문제로 지적하며 “실제 치료 가능한 지역 거점 중심으로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산모·신생아 응급진료체계 개선 TF는 이날 국회에서 3차 회의를 열고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TF는 지난 6일 출범했으며 이수진 의원이 단장을, 김윤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다. 서영석·김남희·김성회·박희승·이광희·전진숙 의원도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 자문위원단에는 김윤미 대한조산협회 부회장, 김희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장, 박정제 백석대 응급구조학과 교수, 서지우 중앙모자의료센터장, 장윤실 대한신생아학회장, 전병조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윤혜설 현대여성아동병원 이사장,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장, 홍정희 병원간호사회장이 참석했다.
이수진 TF 단장은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듣고 현장성 있는 대책 마련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병상 있느냐보다 실제 치료 가능하냐가 중요”
전문가들은 현재 응급 분만·신생아 전원체계가 ‘빈 병상’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실제 치료 가능 여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선 건보 일산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장은 “병상 중심 전원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병원으로의 전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전원 가능한 의료 인력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역별 불균형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당장 현장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인력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며 “지자체 중심 전담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중앙모자의료센터와 연계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지우 중앙모자의료센터장도 “지역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약화돼 단기적으로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자원을 바탕으로 지역별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지원하면 인건비 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며 “지역 간 우선순위를 두고 역량 있는 기관 중심으로 차등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장윤실 대한신생아학회장은 “지역 NICU는 사실상 소멸 수준으로 신생아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거점은 많지만 실제 작동 가능한 거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 된 거점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고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산사·전임의·간호사 모두 부족”…현장 인력난 호소
인력난 문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김윤미 대한조산협회 부회장은 “중증·권역 모자의료센터 내 조산사 배치가 필요하고 산전 상담과 분만 진통 관리에서 조산사 역할이 중요하다”며 “현재 모자의료 진료협력 시범사업에 조산원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향후 확대사업에는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정희 병원간호사회장은 “신생아중환자실과 분만실 간호인력 배치기준 상향, 조산사 확대 배치, 이송 전담인력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를 확대하고 공급체계를 늘려야 하며, 신생아중환자 진료에 대해서는 중증도와 난이도에 따른 추가 수가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병조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고위험 산모와 초미숙아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을 국가가 법적 리스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고위험 산모를 사전 등록해 추적 관리하면 응급상황 발생 시 미리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이송할 수 있어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권역 또는 광역 단위로 실제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선정해 인적·물적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며 “전임의(펠로우) 지원을 확대해 지역 중증환자를 책임질 교수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NICU에서 근무하는 젊은 의사나 산과·소아청소년과 지원 전공의들은 인력 충원이 없으면 더 버티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법 리스크 부담이 크다고 느끼고 있다”고 했다.
“분만 뺑뺑이 막으려면 장거리 이송체계도 손봐야”
장거리 이송체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정제 백석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소방헬기 통합출동 체계를 적극 활용하고 특별구급대 기능을 강화하는 등 장거리 이송에 최적화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산모 등록, 위험도 평가, 분만기관 사전 지정 등을 통해 산모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의료기관 운영 유지에 필요한 고정비는 특별회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해 의료사고와 분쟁을 전담하는 판사를 별도로 두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혜설 현대여성아동병원 이사장은 “분만 뺑뺑이 사건이 나올 때마다 ‘왜 우리는 못 받았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현재는 신생아 주수에 따른 병원 이용이 중증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관련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전달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TF 간사는 회의 직후 “고위험 산모 분만과 신생아 진료를 지역에서 책임질 수 있는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논의했다”며 “센터 지정, 인력 배치, 보상체계, 의료사고 법적 책임 완화 등 포괄적인 방안을 검토했고 이를 토대로 당 차원의 대책 마련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