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개정이 바꾸는 의료 질서”…의료기사법, 통합돌봄 vs 환자안전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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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개정이 바꾸는 의료 질서”…의료기사법, 통합돌봄 vs 환자안전 충돌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6.04.2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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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최보윤 의원 대표발의…“방문재활 길 열어야” vs “의사 감독 빠지면 책임 붕괴”
의협 반박까지 가세…복지위 법안소위 앞두고 직역 갈등 격화

[이슈진단=의료기사 업무범위 입법논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병원 밖 의료’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의료기사 업무범위를 둘러싼 입법 논쟁이 국회와 의료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 근거를 기존 ‘의사의 지도’에서 ‘지도 또는 처방·의뢰’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정비라는 주장과 의료행위 책임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서며 논쟁은 단순 직역 갈등을 넘어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특히 같은 날 국회 기자회견과 대한의사협회의 반박 보도자료가 맞붙으면서, 다음 주 예정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 상정을 앞두고 갈등에 불이 붙는 양상이다.

“현실 반영한 최소한의 개정”…입법 배경은 '통합돌봄'

이번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공동 대표 발의하고, 여야 의원 34명이 참여했다. 핵심은 의료기사 정의 규정에 있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를 ‘지도 또는 처방·의뢰에 따라’로 변경하는 것이다. 여기에 처방·의뢰에 따라 수행한 업무를 기록·보존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입법 취지는 명확하다. 현행 법은 의료기사를 ‘지도’ 아래 업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의사의 처방이나 의뢰를 기반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법과 현실 간 괴리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특히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병원 밖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방문재활과 지역사회 기반 보건의료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정책적 요구가 법안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 21일 국회 기자회견에 나선 환자·장애인·노인·사회복지·의료기사 단체들은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들이 필요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환자가 있는 곳으로 의료가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의 의원들 역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전제로 한 협업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이라며 독자적 의료행위 허용과는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은 21 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실에서 노인·장애인·환자·사회복지·의료기사 단체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돌봄 대상자인 장애인과 노인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고 통합돌봄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수요자 중심 민생법안인 「 의료기사법 개정안 」 국회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은 21 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실에서 노인·장애인·환자·사회복지·의료기사 단체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돌봄 대상자인 장애인과 노인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고 통합돌봄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수요자 중심 민생법안인 「 의료기사법 개정안 」 국회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의사협회 반박 “환자안전 후퇴”…쟁점 국회로

의료계는 같은 날 즉각 반박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개정안이 ‘지도’ 없이 ‘처방·의뢰’만으로 의료기사 업무 수행을 가능하게 해 사실상 독자적 의료행위 확대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특히 환자안전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제시했다. 의사의 직접적 지도·감독이 없는 상황에서는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 어렵고, 의료기사와 의사 간 실시간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적절한 의료적 판단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처방 이후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의사와 의료기사 간 책임 분담 구조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치과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반대 입장을 내놨다. ‘지도’는 단순 절차가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한 법적·윤리적 장치인데, 이를 ‘처방·의뢰’로 대체하면 의료기사의 독립적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의료행위의 본질은 환자 상태에 대한 지속적 평가와 즉각적 대응에 있다”며 “지도 없는 업무 수행 허용은 의료체계의 기본 원리를 흔들 수 있다”는 취지로 법안 재검토를 촉구했다.

의료기사계 “독자진료 아닌 협업 구조”…복지부는 신중론

반면 의료기사 단체들은 개정안이 독자적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업무 수행 방식을 법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의료기사 업무가 의사의 진단과 치료계획에 기반한 기술적·절차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직적 ‘지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협업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또 처방·의뢰 기반 업무 수행과 기록 보존 의무를 결합하면 오히려 책임성과 투명성이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지부는 현행 체계에서 ‘지도’는 같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의 지휘·감독을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 해석된다고 보면서, ‘처방·의뢰’ 도입 시 의료기관 밖에서의 업무 수행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료환경 변화 필요성과 환자안전, 직역 간 역할 분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리 쟁점 “지도 vs 처방”…국회 수석전문위원 “하위기준 없으면 혼선”

검토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지도’와 ‘처방·의뢰’의 개념 차이다. 일반적으로 ‘지도’는 의료인의 지휘·감독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처방’과 ‘의뢰’는 직접적 감독 없이도 업무 수행이 가능한 구조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국회 이지민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처방과 의뢰의 범위 및 적용 기준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문구가 도입될 경우, 의료기사 업무의 허용 범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구체적 기준은 하위법령이나 행정해석에 의존하게 돼 현장 혼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의료기관 외부에서의 업무 수행 가능성, 지도·감독의 방식, 책임 주체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환자안전 및 책임 구조 측면에서 새로운 쟁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석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라 의료기사의 법적 지위와 의료행위 책임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논쟁은 결국 두 가치의 충돌이다. 하나는 의료접근성 확대, 다른 하나는 환자안전과 책임 명확성이다.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 없는 만큼, 해법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설계 방식’에 달려 있다.

어떤 업무를 어떤 조건에서 수행하도록 할 것인지, 의료기관 밖에서도 어떤 형태의 지도·감독을 유지할 것인지, 사고 발생 시 책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국회 관계자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통합돌봄 확대라는 정책적 필요성과 환자안전이라는 원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쟁점 법안”이라며 “상정 자체도 논란이고, 법안소위에 올라가도 직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문구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에 대한 설계가 중요해 보인다. 안건 상정을 계기로 본격적인 조정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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