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도 권리의 주체, 국가 책임 환자정책 시대 열려"
환자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환자를 정책의 객체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제도적 전환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일 뉴스더보이스와 인터뷰에서 “국가가 중장기 계획 아래 환자정책을 책임 있게 추진할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선언적 법률이 될 수도 있다”며 향후 하위법령 설계의 중요성을 짚었다.
안 대표는 이번 법 통과의 의미를 “환자가 더 이상 치료의 객체가 아니라 자기 투병과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요약했다. 환자 권리와 의무를 법률에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환자정책위원회 설치, 정책 참여 보장 등이 포함되면서 환자정책이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그동안 환자정책이 개별 사안 중심으로 대응됐다면, 이제는 중장기 계획과 책임 아래 체계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 과정에 대해서는 “계엄 선포, 탄핵 정국, 의료공백 등으로 1년 가까이 심의가 지연됐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100일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고, 이후 법안 재발의와 함께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통과로 이어졌다.
안 대표는 향후 과제로 “결국 디테일”을 꼽았다. 환자 권리 실현 방식, 정책위원회 구성, 환자단체 등록 기준, 정책 참여 확대 방식 등은 시행령·시행규칙에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법이 통과됐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채워 넣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질의응답이다.
- 우선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장애인, 여성, 청소년, 청년, 노인, 시민, 소비자 등 대부분의 영역에는 각각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법 체계가 있는데, 환자 영역에는 그동안 그런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환자도 투병과 권리, 안전을 뒷받침하는 기본법 체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환자가 더 이상 치료의 객체가 아니라 자기 투병과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정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남인순 의원이 2024년 12월 3일 환자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하필 그날 계엄이 선포됐습니다. 이후 탄핵 정국, 대통령 선거, 전공의 복귀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법안 심의가 거의 1년 가까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환자단체들은 2025년 7월 22일부터 12월 16일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100일 동안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습니다. 의료계가 요구했던 법률들은 하나씩 국회를 통과하는데 환자기본법안은 계속 답보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26년 1월 6일 남인순 의원이 기존 환자기본법안과 환자안전법 내용을 통합한 새 법안을 다시 대표 발의하면서 입법에 속도가 붙었고, 그로부터 3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하게 됐습니다.
- 이번에 통과한 환자기본법의 핵심 내용과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핵심은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환자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입니다.
법안에는 환자와 환자단체의 정의, 환자의 권리와 의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환자정책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사업, 영향평가, 환자정책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환자정책위원회 설치, 환자 또는 환자단체의 정책 참여와 의견 청취 보장, 환자단체 보호·육성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특히 환자의 권리 12개와 의무 4개를 법률에 명시한 점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환자정책은 개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국가가 중장기 계획과 책임 아래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독자적인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봅니다.
- 법이 통과됐지만 앞으로 과제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무엇입니까.
결국 디테일이라고 봅니다. 환자기본법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선언적 법률이 될 수도 있고, 실제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법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12개 환자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시책을 마련할 것인지, 환자정책 연구사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환자정책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또 환자단체 등록 요건과 환자 및 환자단체의 정책 참여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등을 놓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제 법이 통과됐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 내용을 채워 넣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입법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이번 환자기본법이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긴 1년 7개월의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사태가 남긴 결과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진료 공백이 절정이던 2024년 7월 4일이었습니다. 그날 서울 보신각 광장에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소속 환자와 환자가족 400여 명이 모여 의료 정상화와 재발 방지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함께했던 환자단체 활동가들과 환자, 환자가족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또 환자기본법 제정을 요청했을 때 흔쾌히 수락하고 신속하게 대표 발의해 준 남인순 의원, 그리고 실무를 맡았던 김봉겸 수석보좌관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공동 발의 의원들, 법안 초안을 마련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성민 교수, 100일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한 환자단체와 환자, 환자가족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왜 남인순 의원이 환자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하게 됐다고 보십니까.
많은 분들이 왜 남인순 의원이 환자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인순 의원은 2012년 12월 ‘환자권리·환자안전 입법 간담회’를 열어 우리나라에서 환자안전법과 환자권리법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또 이른바 ‘재윤이법’으로 불리는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제도 도입을 위한 환자안전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번에는 환자기본법에 환자안전법 내용을 통합하고 기존 환자안전법을 폐지하는 방식으로 통합 법체계를 구축했습니다. 14년 전 시작된 환자권리와 환자안전 입법 과제를 하나의 기본법 체계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환자기본법 제정 전과 후는 무엇이 가장 달라질까요.
가장 큰 변화는 환자와 환자단체의 정책 참여가 제도적으로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법률상 ‘환자단체’의 정의가 없었기 때문에, 환자단체가 정부나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독자적인 주체로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환자단체가 다른 법률의 지위를 빌리지 않고도 환자단체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환자와 환자단체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정책 종합계획과 시행계획도 수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환자정책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환자정책이 개별 사안 대응을 넘어 국가가 책임 있게 추진하는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