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의원 “의료기기법에 특수관계인 거래금지조항조차 없어"
국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절반 이상이 단일 의료기기 도매상에 사실상 독점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병원에서는 특정 도매상 한 곳이 전체 의료기기 공급액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등 거래 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공립 병원은 독점 공급 비율이 90% 이상인 곳이 한 곳도 없는 반면, 독점 현상은 대부분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25곳(53%)이 특정 의료기기 도매상으로부터 공급비율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24곳)에 이어 2년 연속 절반을 넘겼다.
이는 의약품의 경우 공급비율 90% 이상인 병원이 8곳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사립병원에 집중된 독점…국공립은 전무
독점 현상은 대부분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했다. 국공립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단일 도매상의 공급비율이 90% 이상인 곳은 한 곳도 없었고, 대부분의 국공립 병원은 특정 도매상 비율이 50% 미만이었다. 반면 사립 상급종합병원은 25곳이 특정 도매상에 90% 이상 의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B 상급종합병원은 지난해 27개 도매상으로부터 2,202억 원어치 의료기기를 공급받았으나, 이 중 한 도매상이 2,198억 원(공급비율 99.8%)을 담당해 사실상 독점 구조를 형성했다.
또다른 A 병원은 13개 도매상 중 한 곳에서 전체 공급액의 99.9%를, C 병원 역시 150개 도매상 중 한 곳에서 99.7%를 공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기법,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조차 없어
이처럼 의료기기 도매상이 대형병원과 독점적 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현행 의료기기법의 허점 때문이다. 약사법은 도매상과 의료기관 대표가 2촌 이내 친족이거나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경우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나, 의료기기법에는 이 같은 ‘특수관계인 거래금지’ 조항이 아예 없다.
또한 ▲대금 지급기한 의무 부재 ▲계약서 미작성 ▲공급내역 보고의 불완전성 등으로 인해 거래 투명성이 떨어지고, 병원이 도매상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일부 병원은 대금 결제를 450일까지 지연하거나, 의료기기를 먼저 공급받은 뒤 사용분만 결제하는 ‘가납 거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납업체 활용 70% 넘어…사립병원 주도
김 의원실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함께 조사한 결과,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31곳(65.9%)의 최대 공급 도매상이 간납업체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중 29곳이 사립, 2곳은 국공립이었다. 최대 공급 도매상은 아니지만 간납업체를 활용하는 병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70% 이상이 간납업체를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납업체는 의료기관이 사실상 지배하거나 운영하는 도매 형태로, 구매대행·독점공급·페이퍼컴퍼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과도한 수수료 요구, 대금 지연, 계약서 미작성 등 불공정 거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리베이트 가능성 높아…복지부, 긴급 조사해야”
김 의원은 “약사법처럼 특수관계인 거래를 금지하는 규정조차 없는 의료기기법 아래에서 대형병원이 한 도매상과 독점적 거래를 유지하는 것은 리베이트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의료기기 도매상에게 불공평한 거래 구조를 강요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공정경쟁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기 도매상과 대형병원 간 독점 실태를 긴급히 조사하고, 의료기기법을 개정해 투명한 유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