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환우회 “환영…다른 중증·희귀·난치질환 기준도 손질해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만성골수성백혈병을 포함한 혈액암 환자의 건강보험 산정특례 재등록 기준에서 일부 검사 요건을 삭제하기로 하면서 환자들의 검사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환자단체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혈액암뿐 아니라 다른 중증·희귀·난치질환에서도 동일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1일 논평을 내고 “이번 개선은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왔던 검사 요구를 바로잡은 의미 있는 조치”라며 “혈액암 이외 질환에서도 환자 중심 원칙에 따라 불합리한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날부터 개정된 「만성골수성백혈병(C92.1) 등 혈액암 관련 17개 상병 산정특례 등록 기준」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재등록 과정에서 세포유전자검사만으로 산정특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진성 적혈구증가증 환자는 erythropoietin 검사와 돌연변이 유전자검사로, 혈소판혈증 환자는 돌연변이 유전자검사만으로 재등록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골수검사와 복부 CT검사 등 침습적 검사와 영상검사가 사실상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유전자검사만으로 재등록이 가능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1만5251명에 달한다.
중증질환 환자 부담 줄이기 위한 ‘산정특례 제도’
산정특례 제도는 암과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도입된 건강보험 제도다. 해당 질환으로 등록되면 일정 기간 동안 본인부담률이 크게 낮아져 치료비 부담이 완화된다.
예를 들어 일반 외래 진료의 경우 환자 본인부담률이 약 30% 수준이지만, 산정특례 적용을 받는 암 환자의 경우 약 5% 수준으로 낮아진다. 항암치료나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생명선과 같은 제도로 평가된다.
다만 산정특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질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기준이 필요하지만, 일부 질환에서는 실제 치료 과정과 맞지 않는 검사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혈액암 환자들의 경우 정기적으로 유전자검사를 통해 치료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국제 가이드라인의 표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병원과 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골수검사나 복부 CT검사까지 요구하면서 환자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환자들 “불필요한 검사로 고통”
그동안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3개월마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치료 경과를 확인한다. 유전자검사만으로도 질병의 재발 여부나 치료 반응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럼에도 일부 환자들은 산정특례 재등록을 위해 골수검사와 복부 CT검사를 추가로 요구받았다.
골수검사는 굵은 바늘을 이용해 뼈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검사로 환자에게 상당한 통증과 정신적 부담을 유발한다. 복부 CT 역시 방사선 노출 위험과 검사 비용 부담이 따르는 검사다.
환자단체는 이러한 검사 요구가 의료적 필요성보다 행정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83세 환자가 지난해 12월 산정특례 재등록 과정에서 골수검사와 복부 CT검사를 요구받아 재등록이 지연되고 한 달 단위 임시 연장을 반복했던 사례도 있었다.
환자단체는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현장의 실태를 조사하고 의료 전문가 자문을 받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국회·학회·환자단체 공조로 개선
이번 제도 개선은 환자단체와 국회, 학계가 함께 문제를 제기하면서 추진됐다.
전진숙 의원은 올해 1월 국회에서 “산정특례 재등록 거부로 환자들이 고가의 약값 부담을 떠안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대한혈액학회도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며 기준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학회는 백혈병환우회의 질의에 대한 공식 회신과 보도자료를 통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관리에서 유전자검사가 핵심 평가 방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는 이미 2019년부터 국제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건강보험공단에 재등록 기준 개선을 요구해 왔다.
결국 환자단체와 국회, 학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지난 7월 산정특례위원회에서 관련 기준 개선안이 통과됐고 이날부터 시행에 이르렀다.
환자단체는 특히 당초 올해 12월로 예정됐던 산정특례위원회 논의가 5개월 앞당겨 진행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환자단체 “다른 희귀질환도 개선 필요”
환자단체들은 이번 조치가 혈액암 환자들에게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하면서도 제도 개선이 특정 질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혈병환우회는 “이번 성과는 환자단체와 국회, 전문학회가 6년간 협력해 이룬 결과”라며 “불필요한 검사로 환자들이 겪던 고통과 비용 부담을 줄인 중요한 변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혈액암뿐 아니라 다른 희귀·난치질환에서도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행정 절차가 요구되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환자 중심 원칙에 따라 산정특례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앞으로도 산정특례 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 관련 제도 개선 요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