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었던 유진이가 돌연 여름이 되자 "엄마가 예쁘지 않은 것 같다"고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엄마가 예쁘지는 않지만, 예쁘다고 말해주는 거야"라며 엄마의 기분을 생각해 감정 노동을 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진이 입에서 처음으로 "엄마가 못 생긴 것 같아"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내심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 모습을 아이가 꽤나 인상 깊게 봤던 모양이다.
유진이는 이렇게 엄마가 자신의 말에 실망하진 않았을까 하는 염려와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섞어 고민 끝에 "예쁘지 않지만,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사실 나는 유진이가 처음 "못생긴 것 같다"는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낸 날, 적잖은 심적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외모가 못생겼다는 의미보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엄마라는 존재를 아이가 이제부터 한발 떼어내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슬펐기 때문이다.
나의 분신이었던 유진이는 이렇게 자기 자신의 자아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자신이 각기 다른 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엄마, 다섯 살 때는 엄마가 예뻤어. 그런데 여섯 살이 되니까 엄마가 안 예뻐(이럴 땐 단호박)."
"아이고 아쉬워라."
"그래도 엄마, 내가 예쁘다고는 해 주잖아."
"그래. 그건 고맙네."
"그치? "세상에 예쁜 엄마들이 참 많아. 알아?"
"그래."
"그런데 내 친구 엄마 중에는 없어. 우리 동네에도 없어. 하지만 세상엔 많아."
"아이고, 우리 동네에도 없어?"
"응. 미국에는 많아!"
유진이는 이렇게 새로이 정립된 나름의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잠이 들기 전에는 "엄마, 엄마는 안 예뻐. 알지? 그런데 예쁘다고 해주는 거야"라고 다시 한 번 확인 사살을 한 뒤 "미국에는 엄청엄청 예쁜 엄마들이 많아. 알아? 머리는 노랗고 눈이 파래. 근데 눈이 디게 커"라면서 서구형 미인이 미의 기준이 됐음을 알려줬다.
"그래, 엄마도 잘 알고 있어. 예쁜 엄마들이 참 많아. 그치?"
"그러니까, 엄마도 좀 예쁘게 꾸며야 해. 입술도 빨갛게 바르고, 손톱도 분홍색으로 칠하고. 좀 날씬해지고. 머리도 노랗고 길어야 해."
"아이고, 엄마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엄마가 요즘 운동 열심히 하면서 살은 빼고 있으니까 유진이가 응원하면 아주 조금은 날씬해 질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아니. 날씬한 건 당연한 거야. 화장이 중요해. 눈은 크게, 입술을 빨갛게. 알았지?"
"유진아, 근데 엄마는 화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건 유진이가 이해해 줬으면 해."
"엄마, 나도 알아. 그런데 엄마, 예뻐지면 기분이 좋아져. 그러니까 한번 해봐. 알았지?"
잠자리에 들기 전 인사를 하러 들어간 엄마는 자신의 미의 기준을 설파하는 유진이의 폭풍 수다 덕에 20여 분간을 붙잡혀 있어야 했다. 아이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엄마를 놓아주지 않다가, 엄마의 "이제 그만"이라는 말에 아쉬운 듯 인형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아 억지 잠을 청했다.
이렇게 정립된 유진이의 미의 기준은 다섯 살 때부터 가지고 놀던 마론인형과 최근 자주 접한 디즈니 공주영화 시리즈(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미녀와 야수 등등)의 영향이리라 혼자 짐작해 본다.
하필이면 유진이는 여섯 살이 되면서 '공주'라는 존재에 푹 빠져 있어 아이의 옷장엔 드레스와 원피스가 한가득 채워져 있다. 아침이면 등원 전 거울 앞에서 치마를 펼쳐 보이며 한 바퀴 돌며 자신의 옷 매무새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유아용 화장품이 담긴 가방을 열어 정성껏 립스틱을 바르는 것으로 '꾸밈'을 마무리 한다.
아이는 이렇게 환경이 주는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자신 본연의 모습을 경험을 통해 차근차근 하나의 자아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참, 유진이는 엄마가 예뻐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다"고 힌트를 줬다.
아이를 낳고 근 6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 '칼단발'을 유지했던 내 머리 스타일에도 곧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유진아 고마워. 덕분에 엄마, 머리에 돈 좀 써보며 스트레스 풀 수 있게 됐어. 짜식. 효녀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