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가 유통과정 중 발생한 낮은 약가 책임 떠안는 구조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약가 사후관리제도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의약품 선택과 사용량 관리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약가 사후관리제도는 약가의 효율적 관리와 적정사용 유도, 비용·효과적인 의약품 사용 장려 등의 효과를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오로지 '약가인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의약품 적정 평가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중 올해로 3번째 시행되는 실거래가 약가인하제 역시 보험재정 절감 효과는 얻을 수 있으나 저가구매 쏠림현상, 의약품 중복인하, 신약의 가치 하락 등으로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약가인하 사후 관리로 ▲사용량-약가 연동제 ▲급여범위 확대에 따른 사전 약가 인하 ▲특허 만료 등 제네릭 등재에 따른 약가 인가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약가 인하 등 4종류의 사후관리 제도를 운영 중에 있다.
30일 국회에서 열리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이재현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저가구매장려금 제도를 통해 실거래가를 조사해 약가를 인하함으로써 나타난 보험재정 절감 효과는 2018년도 상반기에만 1,276억 원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절감이 있었다"면서도 "사용자에게 저가 구매를 장려하는 것은 공급자에게는 저가 공급을 강요하는 것으로 약가인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실거래가 조사는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로 약가가 인하되는 품목은 대형병원이 구매해 원내용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에 집중되고, 저가구매장려금의 90% 이상을 구매력이 큰 요양기관이 차지하는 '장려금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3번의 약가인하 결과 최대인하율 10%에 해당하는 품목은 약 2% 정도이고, 나머지 품목들은 인하율 1% 미만이 43.4%~51.8%, 1% 대가 15.6%~16.9%를 차지해 약 60% 이상의 품목이 2% 미만으로 인하됐다.
평균 4,061품목에 대해 평균 1.5%의 약가가 인하되면서 평균 1,081억 원의 보험재정 절감이 진행댔다.
이 교수는 "이는 품목당 평균 약 2,400만 원의 재정 절감을 얻기 위해 4천여 개 품목의 약가를 인하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실거래가 약가인하를 통해 제약사는 특별한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약가인하라는 불이익 처분을 지속적으로 중복해서 받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3번에 걸친 실거래가 약가인하에서 품목 수 기준 상위 10개 제약사에는 거의 변동이 없고, 이들 제약사는 평균 3분의 2 이상의 품목에서 중복해서 약가가 인하됐다"면서 "약가가 중복해서 인하된 품목 중에는 주사제 비율이 44~48%로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특정 품목과 특정 제형(주사제)에 대한 약가인하 쏠림 현상도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약가인하 쏠림현상으로 약가인하 품목을 다수 보유한 상위 10개사에 명인제약, 한미약품, 종근당, 환인제약, 동아에스티, 화이자, cj헬스케어, 노바티스, 한림제약, 일동제약 등이 올랐다.
이들 제약사는 평균 100개의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 처분을 받았다.
이 교수는 "2020년에 인하된 3,924품목 중 71%에 해당하는 2,795품목은 2018년에도 인하됐고, 48%인 1,893 품목은 2016년에도 이미 중복해서 인하됐던 품목"이라면서 "국산 신약은 3번의 실거래가 약가인하에서 평균 인하율이 0.65%를 보이며 대부분 1.0%대 미만 약가 인하를 보이면서 약가인하의 의미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요양기관의 구입가격을 기반으로 약가가 형성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매상을 통해 요양기관이 구입한 가격을 제약사의 약가인하에 근거로 삼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맞지 않아 행정의 기본원칙인 ‘부당결부금지원칙’에 어긋난다"면서 "약사법상 도매상이 실제 구입한 가격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구입가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한 도매상 정보를 정부는 영업비밀보호라는 이유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약사가 도매상의 요양기관 공급가를 통제하면 ‘재판매가 유지행위’에 해당함에도, 국공립요양기관을 실거래가격 조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1원 낙찰’이라는 모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실거래가 조사를 진행하는 일본과 대만, 호주의 경우 'R-zone'(Reasonable zone)을 구성해 해당 범위 내에서는 약가를 인하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5%, 대만은 신약 15%, 제네릭 6%, 호주 10%를 유지하며 약가를 보호하는 기전을 운영 중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3번에 걸친 실거래가 약가인하 결과에 일본의 R-zone 5%를 적용해 보면 그동안 인하됐던 품목의 80.5%~89.3%가 약가인하 유예 품목에 해당한다"면서 "이처럼 일본·대만·호주는 신약에 대해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약가인하를 완충해주는 제도가 있어 기업의 신약개발을 도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현 교수는 약가인하 제도의 적정성을 살펴보기 위한 설문조사도 진행했는데 보건의료계 전문가 대부분은 약가인하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교수가 진행한 '보험약가 사후관리 제도 개선을 위한 델파이 조사'에서 응답자 대부분이 사후 약가 관리제도가 목적이나 취지에 부합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약제비 절감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대다수가 절감 효과가 없다는 응답을 나타냈다.
답변 중 특허만료의약품의 약제비 절감 효과에 대해 10점 만점에 6.5점으로 정책 추진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약가인하에 따른 제약사 손실이 보험재정 절감과 비교해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대다수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고 역시 특허만료의약품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응답을 보였다.
신포괄수가제도와 의료관리체계, 유통질서 확립 등 다른 제도와 조화로움을 묻는 질문에도 상당수의 응답자들이 다른 제도와 조화롭지 못하다는 답변을 나타냈다.
제약사의 R&D에 미치는 영향과 반품 등 사회적 비용분석 등을 토대로 한 제도적 효율성을 평가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대부분이 부정적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응답했고, 의약품유통정책과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중복적 규제라는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실거래가 조사 약가인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질문 역시 응답자의 대부분이 10점 만점에 7.5점을 보였고, 제도를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6점에 달했다.
이 교수는 "결과적으로 현행 약가 사후관리제도에 대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제도 운영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가격 조사 대상과 인하폭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산 신약 개발 동기 부여 방안 마련과 일정 기간 약가인하를 유예할 수 있는 조치들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보험자와 요양기관뿐 아니라 약가 관리 제도의 한 당사자인 제약업계와 협의를 통하여 사후관리 제도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 생산적인 제도, 예측 가능한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조정해 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