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과실 입증을 왜 환자 가족이 해야하나" 울분
"환자 가족 '울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와 법 만들어야"
의료 과실로 인해 의식불명에 빠진 아이를 일명 응급실 뺑뺑이로 잃은 엄마의 사연이 지난 10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만4살 이었던 김동희 어린이는 상급종합병원인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편도제거수술을 받고 2019년 10월 6일 퇴원 했으나 상태 악화로 그 다음 날인 10월 7일 2차 병원에 입원했다. 이틀 뒤인 10월 9일 수술 부위 대량 출혈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119구급대원의 CPR(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했으나 수용 거부로 20분 거리의 부산동아대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김동희 어린이는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5개월을 투병하다 끝내 사망했다.
김동희 어린이의 어머니인 김소희씨(만 37세)는 "아이의 죽음은 진상규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친 의료과실로 인한 것을 알게 됐다"면서 "동희의 편도제거수술을 했던 양산부산대병원은 당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심폐소생술을 받는 다른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이유로 동희의 수용을 거부했지만 이 마저도 검찰 조사를 통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김소희씨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과실과 피해와 그 사이 인과관계까지 입증할 책임이 전적으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있는 현재 우리나라 법률체계 안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슬픔과 분노로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다"면서 "제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희 아들의 사고가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진상규명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울분을 세상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면서 "울분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와 법률도 정부와 국회가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김소희씨는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에게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 "동희처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차로 이송 중인 초중증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더이상 죽는 일이 없도록, 응급실 뺑뺑이라는 부끄러운 단어가 더 이상 언론방송에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기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뉴스더보이스는 김소희씨의 샤우팅 내용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고를 전면 게재한다.
안녕하세요? 편도제거수술 의료사고를 당한 동희 엄마 김소희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건 4년 전 세상을 떠난 저희 아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인데요. 저는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지는데요. 오늘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이야길 하는 게 처음이라 많이 떨리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런 엄마를 응원하러 저희 동희가 함께 왔습니다. 제 머리 맡에 항상 두고 자는 사진인데요. 살아있었다면 올해 열 살이 되었을 저희 아들 동희가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참척의 고통이라고 하는데 이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습니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는 저희 동희는 2015년생이고요. 한 달에 두어 번 40도 고열을 앓았는데 열날 때마다 병원 가면 편도염이다. 시기가 되면 수술을 해주는 게 좋겠다고 했고, 일 년의 고민 끝에 조금 더 건강히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수술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제 가슴 속 평생 대못이 박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편도제거수술이 시작된 건 2019년 10월 4일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통상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안내를 받았으나 동희는 2배의 시간이 걸려 2시간 13분 만에 수술이 끝이 났고, 집도의는“수술 마무리 단계에서 출혈이 살짝 있어 지혈한다고 늦었다. 일 년에 한두 건 발생하는 특이케이스인데, 환자들마다 피가 많이 나는 사람도 있고 작게 나는 사람이 있는데 지혈 조절이 다 되어 수술이 잘 끝났으니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하였고, 의료지식이 없는 보호자의 입장에선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동희가 여전히 물과 경구약도 잘 삼키지 못했고, 퇴원하는 날 10월 6일 담당 의사에게 입원을 더 연장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어머니, 편도제거수술하면 원래 못 먹어요. 수액 치료는 저희 병원에서 못해 드리니까 작은 병원 가서 2박 3일 정도 입원하면 애기들 다 잘 먹어요! 출혈 없으니까 나가세요~하며 냉소적으로 퇴원을 강행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퇴원했고, 여전히 잘 못 먹어서 퇴원 후 다음 날 10월 7일 바로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찰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수액 치료와 입원을 권유해 같은 날 2차 병원에 수액 치료를 하기 위해 입원을 하였습니다. 2차 병원 입원 이틀째 되는 날 10월 9일 동희가 제 손 가득 피를 토했고, 곧바로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가 놀라서 나가길래 당연히 의사를 호출하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사이 의사는 오지 않고 119에 먼저 신고가 되어 있었고, 동희가 두 번째 피를 대량으로 토하며 그대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19구급대원이 CPR(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수술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하는데 도착 6분을 남겨놓고 “다른 CPR 환자가 있어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고, 20킬로미터 떨어진 동아대병원에 도착하였으나, 늦어진 응급처치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5개월을 투병하다가 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들 의료사고 후 정해진 외래진료가 있어 집도의를 찾아가 아들의 상황을 알렸을 때, 그제서야 “재수술, 재마취를 했다고 처음 들었습니다. 병원에선 동희가 일주일이 고비다, 이틀이 고비다 그랬지만 의학적으로는 굉장히 힘든 상황임에도 동희는 5개월을 버텨주었습니다. 저희는 동희가 살아있을 때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해 주고 아이가 떠나기 전에 의사의 사과를 원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법대로 하라”였습니다. 거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란 쉽지 않고, 당시 동희 아빠가 백혈병 투병 중이었기에 소송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원한 2차 병원의 당직의 보다 왜 119가 먼저 도착한 건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양산부산대병원에선 수술해준 자기 환자를 왜 거부한 건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법대로 형사고소를 하였고 그 과정은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양산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의료수사전담팀이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고, 그 후 저희는 공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다행히 청원이 20만명을 넘었고 청원 후 의료수사전담팀이 있는 경남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이 이관되어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었는데요.... 그런데 또 사실관계가 왜곡되어있는 진료기록의 감정과 그 감정을 의사가 하기에 공정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혐의 입증에 어려움이 있던 저희 사건이 다행히 3년 만에 검찰의 전문검사 이송제도를 통해 의사 출신 검사가 사건을 맡아주셨고, 검사의 제대로 된 수사로 저를 위로도 해주시고 저희 동희를 애도도 해주셨습니다. 그때 참 많이 위로가 되었는데요. 이 설명과 위로를 잘못한 의사와 병원이 아닌 검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수사 결과는 너무나도 기가 막혔습니다. 동희의 사망원인은 크게 3가지였는데요. 첫 번째 - 집도의는 수술 후 동희에게 출혈이 발생한 걸 확인하고도 출혈 부위를 특정하지 못해 목젖까지 환부를 광범위하게 소작하고 재수술, 재마취 사실을 은폐한 채 의무기록지에 기재하지 않고, 아들 동희의 담당 의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원하는 그 날 담당 의사는 재수술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편도절제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증상이라며 퇴원시켰던 것이었습니다. 재수술 후 넓은 부위 소작으로 2차 출혈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음에도 추가설명과 대처법 등을 보호자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일반적 수술이 끝난 환자와 같이 사후 관리하며 퇴원시켰습니다. 또한 아들의 의료사고 후 제가 항의를 한 다음 날, 수술 후 19일 만에 의무기록지를 추가 기재해 수정했습니다. 두 번째 원인은 수액 맞았던 2차 병원 또한 문제가 많았는데요. 그날 원래 당직 의사가 몸이 좋지 않아 다른 병원 아는 후배 의사에게 당직을 부탁했고, 이 사실을 병동에 알리지 않아 초중증 응급상황에 의사가 바뀐 사실을 몰랐던 간호사가 의사 찾느라 골든타임을 놓쳤고, 대타 의사는 응급 장비가 어디에 있는지 숙지도 않고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아들의 의식평가, CPR, 피가 폐나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지 못한 채 보호자에게 안겨 이동하게 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응급처치도 하지 않고 전원을 견딜 수 있는 상태인지도 평가하지 않은 채 전원을 시켰으며, 기도 확보를 위한 기도유지조차도 시행하지 않고 수수방관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가 막혔던 세 번째 원인은 상급종합병원이면서 권역응급의료센터이자 소아전문응급센터를 갖추고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이 당시 CPR중이라 아들의 수용을 거부하였으나 수사 결과 이미 2시간 이전에 CPR 환자가 소생해서 다른 중환자실 담당 의사에게 넘어간 상태였고, 119에 두 차례 전화 요청에도 마치 CPR중인 환자가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먼저 온 CPR 환자의 재CPR 위험도 때문에 동희를 받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6월에 업무상과실치사, 의료법 위반,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모두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런 엄청난 의료범죄를 저지르고도 양산부산대병원은 사과는커녕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진심 어린 사과와 설명을 해줬더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거대병원 체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철옹성 같은 의료권력과 병원 관계자들의 잔혹할 정도의 뻔뻔함, 피해자는 소송을 시작해도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 의료지식이 없는 피해자가 입증을 해야 하는데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습니다. 저희 민사재판 또한 1심이 4년째 진행 중인데, 결과적으로 형사고소를 해야 수사를 통해 증거도 확보할 수 있었고, 의료과실도, 의료범죄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앞에서 피를 토하며 세상과의 마지막 눈을 감던 그 모습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평생을 가슴을 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장례를 치를 때에도 이별의 아픔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질병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과학수사대에서 저를 조사하고, 아이의 사진을 찍고, 부검까지 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아프다간 아이에게 또다시 칼을 댄다는 건 못할 짓이기에 부검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백혈병 투병 중이던 남편이 아들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고 쓰러져, 폐렴까지 겹쳐 호흡기를 달게 되어 장례도 저 혼자 치러야 했습니다. 저 혼자 뜨거운 화장터에 아들 동희를 보내야 했습니다. 제 목숨과 바꿀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동희가 28개월에 남편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간호를 하러 가야 했고 동희는 저희 친정 부모님께 맡겨두게 되었는데... 그때가 말이 트일 시기라 할아버지 할머니 말투를 배워 사투리를 귀엽게 쓰던 아이였습니다. 저희가 병원을 간다고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마다 항상 웃으며 저희를 배웅해 줬습니다. “엄마아빠 단디가래이~”,“비가 와서 우째갈라카노”,“김강률 아빠 퍼뜩 나사온네이~ 아빠 파이팅!”을 외쳐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저희 동희는 아빠가 암 투병 중에도 밝고 건강하게 떼 한번 안 썼던 제겐 너무나도 고마운 아들이자 저희 부부의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잃은 저희에게 돌아온 건 사과와 애도가 아닌 법대로 하라란 말이었기에 아들의 죽음에 진상규명을 위해 남편은 진통제와 항암제를 복용해 가며 1인시위에 나섰고, 그러던 중 병세가 더 악화되어 2022년 4월 18일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희를 만나러 소풍을 떠났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였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남편과 동희가 많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이제는 저 혼자 긴긴 법정싸움을 하고 있지만, 저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겁니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엄마이기에, 자식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의료진과 병원이 합당한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제게 바람이 있다면...저희 아들 동희 사건이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고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이 진실 규명을 위해 겪는 고통과 울분이 얼마나 큰지 세상이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이러한 울분을 해소하는 제도와 법률도 정부와 국회가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동희처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차로 이송중인 초중증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죽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실 뺑뺑이라는 부끄러운 단어가 더 이상 언론방송에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희 아들 동희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