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마주한 '인지능력'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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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마주한 '인지능력' 위기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09.20 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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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있잖아. 그거."

요즘 제가 자주 하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저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 나옵니다.

기자 일을 시작하고 30대 중반 무렵 '핫한' 신약 두 개를 비교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제품명을 번갈아 잘못 부르는 바람에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바 있던 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후로는 인터뷰 전에 몇 분을 내어 '제품명'을 곱씹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그 덕인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제품명을 혼용하는 일이 없었는데 최근 그 봉인이 해제됐습니다.

인지능력의 저하를 인정할 수 없어 처음 댄 핑계는 "아이를 낳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의료진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나이'와 연관이 있다는 팩트 폭격을 받고 나서야 '나이듦'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인지능력의 저하와 '나이듦'의 상관관계를 "왜 이토록 빨리 나만 체득하게 됐는가"를 생각하게 됐죠. 더 정확히는 좀 억울하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최근 저와 친한 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애만 안 잃어버리면 된다"고 자조한 적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과 가벼운 대화에서는 '인지능력의 저하'를 말할 때 부끄러움이 덜 합니다만, 일의 영역에서는 사실 이것이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동의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나 제품 정보를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할 때는 자료에 기대어 기사를 쓰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슬픈 자백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게 없는 꼼꼼함이 갑자기 발현되지 않는 이상 창작에 가까운 기사 쓰기는 이제 접어야 할 듯합니다.

이런 상태인 저는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치매'와 '인지능력 저하' 또는 '경도인지장애'라는 단어가 고령을 목전에 두거나 고령이신 '어르신'들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때맞추듯 오늘 치매학회에서 '경도인지장애'의 적극적인 관리와 진단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내용 중에 제가 가장 안심한 부분은 학회에서 '치매친화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고, 관련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학회는 치매사회로 이미 진입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관리시스템을 만들자며 거의 촉구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습니다.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해 치매까지 가지 않게 하는 '사전관리'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었죠.

저는 이런 학회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거의 호소에 가깝게 경도인지장애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사회적 비용의 감소, 환자의 일상생활 유지를 비롯해 지역 사회 내의 안전망 구축, 가족과 환자가 치매에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까지 닿아있기 때문이죠.

정부는 수많은 노인 관련 질환에 대한 관리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관련 질환을 다루는 전문가의 현실적인 정책 제안은 귀를 열고 들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그나마 있던 치료 가능한 약제를 비용부담을 문제로 몽땅 폐기처분하는 결단력 보다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정책 제안 중에서도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유능한 정책 전문 관료가 복지부에 있기를 그래서 희망해 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구요? 제 미래의 삶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경도인지장애를 의심하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사십대 언저리의 예비 환자는 미래에 치매를 앓더라도 가족의 짐으로 낙인찍혀 요양기관에 보내지는 신세는 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늙어 치매를 앓더라도 가족과 웃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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