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쉬움 남긴 사전승인 고가약 급여관리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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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쉬움 남긴 사전승인 고가약 급여관리 포럼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2.02.07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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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척수성근위축증치료제(SMA) 스핀라자주(뉴시너센나트륨)였을까? 지난달 19일 심사평가원이 개최한 '사전승인을 통한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포럼'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날 포럼은 그야말로 '판'이 컸다. SMA 분야 임상전문가인 채종희 서울대병원 소아신경과 교수를 포함해 전문가 4명이 SMA 질환의 특징과 급여현황,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방안, 초고가의약품 환자접근성, 다양한 관점과 다학제-중심적 평가 기준 등에 대해 주제 발표했고, 전문가와 관련 단체·기관의 책임자 등 6명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처음부터 '판'이 SMA를 중심으로 짜여졌던 탓인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온라인 청중의 상당수는 SMA 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면 왜 SMA와 스핀라자였을까? 

정부와 보험당국은 고위험·고비용 의료서비스 요양급여 여부를 치료 전에 결정해 최적의 안전의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사전승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역사는 긴 편이다. 1992년 조혈모세포이식을 시작으로 2007년 면역관용요법, 2012년 솔리리스주(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PNH), 2016년 ICD(심율동 전환 제세동기 거치술) & CRT(심장재동기화 치료), 2018년 임상연구-솔리리스주(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 aHUS)-VAD(심실 보조장치 치료술), 2019년 스핀라자주, 2020년 스트렌식주, 2021년 울토미리스주 등으로 확대됐다. 

약제 중에서는 솔리리스가 가장 빠르고 스핀라자는 두번째다. 그런데 심사평가원은 첫 사례이면서 역사도 가장 긴 솔리리스 대신 스핀라자를 사전심의 고가약 포럼의 중심의제로 잡았다. 그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심사평가원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이 있었겠지만 운영실적에 비춰 정부와 보험당국이 그나마 '생색(?)' 낼 수 있는게 솔리리스보다는 스핀라자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실례로 스핀라자는 지난해까지 누적 사전승인율이 75.4% 수준이다. 솔리리스의 경우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PNH) 적응증 53.8%,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aHUS) 적응증 20.5%로 스핀라자보다 저조하다. aHUS 적응증의 경우 지난해 6.0%로 거의 승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솔리리스가 주요의제가 됐다면 승인율이 낮은 이유가 주요 포커스가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스핀라자는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은 영향이었던지 이번 포럼에서 승인율은 논점이 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지정토론자인 김애련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스핀라자는 처음 등재 때부터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급여범위가 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솔리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핀라자의 승인율이 높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날 온라인 게시판에는 연령기준 등 급여기준을 확대 조정해 달라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정부와 보험당국의 생각과 진료현장의 요구 사이에 간극이 적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어쨌든 약제 사전승인제도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뉴이스보이스는 사전승인 약제 급여관리 방안이 주제이니 솔리리스 aHUS 적응증 승인율이 저조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질의했다. 하지만 주최측이 해당 질문을 채택하지 않아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날 포럼 중심의제가 아니어서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체적으로 이날 포럼이 남긴 아쉬움과 괘를 같이 하는 부분이었다. 

늦었지만 '훈수'를 두면 이렇다. 이날 포럼에서는 고가의약품 급여방안으로 사후평가와 이를 위한 데이터 구축, 사후평가에 대한 사전합의의 중요성 등이 주로 거론됐다. 

한마디로 '사전심의' 대상을 포함해 초고가의약품 전반에 대한 급여관리가 논점이 됐고, 포럼 주제인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서는 정작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물론 심사평가원 측이 의제 자체가 '사전심의'보다는 '고가의약품 급여관리'에 방점이 있었다고 하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고가의약품'에 무게를 뒀다면 '사전심의'라는 수식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구나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방안으로 사전심의제도 확대가 대안에 포함되지 않은 건 이날 토론에 '사전심의'가 전제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주제에서 조금은 엇나간 엉뚱한 얘기를 이날 '열심히' 토론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달리 aHUS와 솔리리스가 이날 의제의 중심이었다면 아마도 낮은 사전승인율과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좁은 급여기준, 이로 인한 환자 접근성 이슈, 사전승인제도 취지와 개선방안 등이 디테일하게 다뤄졌을 것이다.

aHUS 사전심의 문제는 두 가지 사례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사전심의에서 불승인 받은 환자가 비급여로 응급 투약을 받아 혈액학적 수치와 신장기능이 회복된 2020년 대한신장학회 학술대회 발표사례가 하나다. 당연하지만 건강을 회복한 해당 환자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져야 했다.

연거푸 두번 불승인된 뒤 세번째에 사전승인을 통과한 환자 사례도 있다. 이 환자는 이렇게 진단이후 3개월이 돼서야 솔리리스를 투약받을 수 있었는데 예후가 안좋아서 안타깝게 사망에 이르렀다. 통계를 다시 정리하면 aHUS는 지난해까지 총 176건이 사전심의돼 이중 36건(20.5%)만 승인됐다. 지난해에는 50건 중 3건(6.0%)만이 받아들여졌는데, 사전심의 문턱을 넘지 못한 환자 중 6명 정도가 치료를 받지 못해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례를 보면 사전승인제도가 환자 접근성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 사전승인제를 적용받는 약제는 사전신청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제한돼 있어서 국내에서 해당 질환 치료에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투약 필요성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낮은 승인율은 급여기준과 사전심의, 진료현장 간 간극이 얼마나 큰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은 어떤게 있을까. 활성형 혈전미세혈관병증이나 신장손상 등 aHUS를 진단하는 여러 지표값을 열거하고 이를 모두 충족해야 급여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는 국내 급여기준을 호주나 캐나다, 스위스 등과 같이 2~3개 이상을 만족하면 되도록 기준을 손질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게 여의치 않으면 일단 aHUS가 의심되는 환자들에게 초기 투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줄 필요가 있다. 2020년 신장학회 학술대회 발표 사례가 성공사례로 좋은 본보기다. aHUS의 경우 투여 2개월 간격으로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 투여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초기 투여 인정이 과도한 보험재정 지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제약사 측의 재정분담 노력도 수반될 필요가 있다. 2개월 뒤 모니터링을 통해 진단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환자에 대한 투약비용 중 일부나 전부를 회사 측이 분담하는 것이 그것이다.

급여기준과 사전심의위원회 간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심의위는 당연히 이미 설정돼 있는 급여기준에 맞춰서 심의를 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집행만 할 게 아니라 진료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필요한 경우 급여기준에 반영하도록 개선의견을 제시한다면 급여기준을 합리화하고 환자 접근성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날 포럼 패널토론자였던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초고가약제에 대한 사전승인제나 사후평가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재정관리 목적으로만 활용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뒤늦은 훈수이지만 사전심의제도가 재정관리에만 매몰되고, 사전심의위가 기계적인 해석과 집행에만 신경 쓴다면 이 제도는 환자 접근성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장벽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 이사의 지적을 정부와 보험당국이 곱씹어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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