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투사가 될지 몰랐다며 깜짝 놀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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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투사가 될지 몰랐다며 깜짝 놀라더군요"
  • 양민후 기자
  • 승인 2020.03.16 06:3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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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

서울 광화문 소재 한국당뇨협회 사무실. 그 곳 한 켠에 마련된 책상 위에 택배상자들이 가득하다. 먼저 기다란 모양의 상자를 뜯으니 현판이 나온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44)는 수줍은 미소로 스마트폰을 꺼내 혼자만의 현판식을 갖는다. 다음 상자를 개봉하니 사무용품이 나오고 보드판, 디퓨저, 꽃병 등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피스 쉐어 한달차인 김 대표의 공간은 그렇게 회원들이 보낸 사랑으로 채워진다.

“학창시절에는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죠. 그래서인지 언론에 소개된 제 이야기에 동창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투사가 될 지 몰랐다고.”

정보통신공학으로 석사과정까지 밟은 김 대표는 엔지니어 길을 걸었다. 유수 기업 2곳을 거치며 오랜 기간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다. 남편과 건강한 아들 둘을 둔 워킹맘, 그때는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2012년 1월, 당시 4살이었던 첫째 소명이가 제1형 당뇨병으로 진단 받으며 큰 전환점을 맞는다. 밤낮없이 2시간마다 아이의 혈당을 체크해야 했고, 인슐린 주사도 수시로 투여해야 했다. 직장에서는 혈당 걱정에 항상 목이 타고 불안했다. 알코올 솜과 채혈로 거칠어진 아들의 손에 눈물도 많이 훔쳤다. 의젓한 소명이는 이런 엄마의 짐을 덜어줬다. 4살 가을에 혈당 체크를 스스로 시작했고, 1년 뒤엔 인슐린 주사를 혼자서 놓는 법을 배웠다.

'왜 커뮤니티에는 우울한 내용밖에 없을까'

“소명이가 1형 당뇨병으로 진단 받았을 때 처음으로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했어요. 동병상련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나마 버틸 힘을 얻었죠.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왜 커뮤니티에는 우울한 내용 밖에 없을까’, ‘왜 슬픔에만 잠겨 머물러있나’.”

김 대표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우선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1형 당뇨병에 대해 공부했다. ‘체내에서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는 병’이란 희미한 정의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갔다. 해외논문과 기사를 번역해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역할도 자처했다. 유용한 정보 덕에 회원들 사이에서 존재감은 커져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해외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연속혈당측정기’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이 기기가 있으면 소명이의 손은 2시간마다 고통 받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위법?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그만큼 간절했죠"

“제가 찾은 기기는 당시 국내에서 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인의 지인을 거쳐 유럽에 거주하는 사람을 찾았죠. 이 분을 통해 구매해서 국내로 배송 받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소명이만 생각할 수 없어 주변 사람들 것까지 같이 구매했어요. 그러다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 사람들에게 VPN 우회 접속법을 강의한 적도 있죠. 기기 구매를 요청한 분들 중 변호사 등 법 관련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위법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그만큼 간절했죠.”

김 대표의 삶은 연속혈당측정기로 인해 한층 밝아졌다. 소명이는 원하던 축구교실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여전히 부족한 점은 있었다. 기기 사용자 외엔 혈당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은 전공을 십분 발휘했다. 기기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혈당 변화를 핸드폰으로 받아보는 장치를 만들었고, 이런 정보를 담아낼 클라우드와 웹페이지를 연동시켰다. 해외커뮤니티에 올라온 ‘레시피’가 교본 역할을 했지만, 전문성 없이는 따라 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작업이었다. 김 대표는 부품값만 받고 지인들 것까지 만들어줬다. 매주 금요일에는 환우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해 클라우드와 웹페이지 연동 방법을 공유했다.

진정성이 불러온 오해..입증한 결백

이런 진정성은 오해를 불러왔다. 2017년 김 대표는 관세법 위반,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정부는 그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리구매 및 무허가의료기기 제조를 실시했다고 의심했다. 고된 피의자 조사에 김 대표는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결백함을 입증했고, 도움을 자처한 전문가들의 손길까지 이어지며 무사히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겪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설립이었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위한 결정이었다.

“2017년 7월 환우회를 결성했어요. 한달 뒤엔 정부가 문제 삼았던 그 제품의 회사 관계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죠. 제품의 정식 판매를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환우회 회원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려 자료를 준비했어요. 국내 1형 당뇨병 현황에 대한 지표를 소개하며 제품의 필요성을 어필했죠.”

해당 제품은 1년 뒤인 2018년 7월 국내 정식 허가됐다. 그리고 반년만인 다음해 1월부턴 건강보험을 적용 받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측은 환우회의 의견에 적극 귀를 기울였다.

"400만건의 서명, 캐리어가 부서질 정도 무게였죠"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의 초석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대표는 1형 당뇨병 자녀를 둔 지인의 딱한 사정을 들었다.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신청했는데 사실상 거부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김 대표가 직접 나설 이유는 없었다. 소명이의 경우 직장에서 제공한 최적의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아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에 김 대표는 ‘슈거트리’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소아당뇨병 가산점을 골자로 한 영유아보호법 개정에 앞장섰다.

“전국 회원분들과 함께 거리 서명에 나섰어요. 모두의 노력으로 총 400만건의 서명을 얻어냈죠. 서명지의 무게로 캐리어가 부서질 정도였어요. 처음엔 국회에서 만나주지 않더군요. 하지만 계속 시도했습니다. 2015년 11월엔 국회토론회도 열었죠. 마침내 이듬해 1월 영유아보호법이 개정됐어요. 소아당뇨병 환아는 규모가 큰 어린이집에 우선 순위로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시설에 상주하는 간호사의 인슐린 투약 보조도 그때 허용됐습니다.”

"우리 스스로 전문가돼야..의료데이터 통합 중요한 과제"

“환우회 운영에서 우선 시 여기는 점은 투명성입니다. 상업적인 활동 및 홍보에 대해선 확실한 제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후원도 목적을 명확히 따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환자가 수동적이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였다면, 현재는 능동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죠. 1형 당뇨병은 자가관리가 중요한 만큼 환자 스스로 많이 알아야 합니다.”

김 대표는 환자단체가 큰 목소리를 내려면 보다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들어도 합리적인 주장을 내놔야 깊은 공감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만 전문성을 가져선 힘들다. 회원 모두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환경개선 측면에선 의료데이터의 활용도에 주목하고 있다. 개개인의 혈당 정보 등이 의료진에게 잘 전달될 수 있다면 환자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의견이다. 그러기 위해선 의료데이터의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피력했다.

“현재 혈당관리 어플리케이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요. 일부는 스스로 만들어서 쓰기도 하죠. 표준화되지 않다보니 이런 데이터가 의료진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있어요. 이를 극복하려면 데이터통합이 필요합니다. 데이터가 통합되면 의료진은 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어요. 환자는 전원의 부담을 덜 수 있죠. 지금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엔 내원 부담도 한층 감소할 수 있습니다.”

"환우분이 회장 맡으시면 성실한 조력자가 될 것"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가입했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사단법인화다. 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함께 회원들을 위한 치유활동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의료기기와 관련한 급여확대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사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까지만 환우회를 이끌 생각이었다. 협의체와 학회쪽에서 이사직을 제의하며 함께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환우회에 생길 공백을 우려해 당분간 회장직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보내온 응원 편지가 큰 힘이 돼요. ‘우리 환우회에도 김 대표님 같은 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다시 동력을 얻죠. 물론 환우회 일이라면 현판과 사무용품, 그리고 가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해주시는 회원분들도 든든한 버팀목이예요. 궁극적으로는 환우분께서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를 이끄셨으면 합니다. 환자 본인이 목소리를 내야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죠. 향후 환우분이 회장직을 맡으시면 성실한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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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2020-03-16 08:37:26
기사 잘 보았습니다.

KMY 2020-03-16 08:46:21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화이팅~

송태다혜 2020-03-16 09:01:25
환우회 자세한 히스토리 너무 감사합니다.
그 예전을 생각하니 현재 환우회 대표님과 환우회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언제나 지지하며 함께하겠습니다.

김은정 2020-03-16 10:14:47
항상 노력하시고 더 나은 미래을 위해 뛰시는 김미영대표님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좋은 기사로 기쁨마음으로 한주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신 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김희경 2020-03-16 10:22:29
열일해주신 대표님덕에 저희아이,저희가족 모두가 많은 해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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