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19'와 영화 '컨테이젼'…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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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19'와 영화 '컨테이젼'…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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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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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수 교수(고려대의과대학 환경의학연구소)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작년말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2019-nCoV)이 급속도로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급기야는 올해 1월 20일 우리나라에도 첫 확진자를 발생시킨 후, 지역사회로 확산되면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 수준의 파장을 일으킬 태세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보건당국, 의료기관, 국민 모두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 준비를 해왔지만, 항상 그렇듯 신종 감염병 위기가 발생하면, 초기 대응은 미숙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이제 20일이 넘어가면서 나름 대응 태세가 나아지고 있지만, 유행(outbreak)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예상하긴 어려운 일이다.

이런 면에서 2011년 개봉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는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적인 효과를 위한 이야기 구조가 다소 현실과 괴리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매우 사실적이다. 이에 근거해,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 부대변인, 이후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 대응 외부합동평가(JEE) 위원으로 베트남과 필리핀 등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는 역시 정보 공개다. 이번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영화 컨테이젼에서도, 그리고 우리나라 메르스 상황에서 동일한 것은 감염병 관련 정보 공개(information disclosure)다. 특정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해당 발생 장소(노출 병원, 식당, 영화관, 카지노 등)을 포함한 환자의 이동경로 등을 정확히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헌법정신에 입각해 국민에게 기본적인 알권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장소와 이동경로에 있었던 국민들에게 혹시라도 감염병에 노출됐을 수도 있음을 신속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인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보호함은 물론,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킴으로써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혹은 지역사회를 보호하도록 하려는 게 목적이다. 또한 국민들이 해당 장소에 특정 기간(소독 등이 끝나지 않은 상황) 동안에 가지 않도록 함으로써 감염 예방 기능까지 할 수 있는 돕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보건당국은 영화 컨테이젼에서 주인공 베스(기네스 팰트로)의 집이 있는 미네소타주가 봉쇄될까지 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아가 美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핵심 간부인 치버 박사는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이를 누출하기까지 한다. 이 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보건당국의 정보 제공 수준은 2015년 메르스 사태 혹은 영화 수준에 비해서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 수준 역시 너무나 높아졌다. 어렵겠지만, 더욱 신속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한 대목이다.

둘째, 국민들과 공감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확인했지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상황에 처하면 합리적 혹은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왜 차분하지 못하게 대응하느냐” 혹은 “침착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겁에 질려 우는 아이에게 무조건 훈계하는 꼴이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논리’ 뇌(신피질)보다는 ‘감정’ 뇌(구피질)가 더 작동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놓이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만 발생한다. 지구상에서 영장류가 600만년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남은 특징이기도 하다. 영화 컨테이젼에서는 보건당국의 공감 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MEV-1’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자와 사망자,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에만 골몰돼 있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가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는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과 상통한다. 영화에서 보듯, 공감하지 못하면 불안과 두려움은 폭동과 약탈을 통한 대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루머를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제대로 된 정보와 가짜 뉴스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영화 컨테이젼에서 CDC의 치버 박사는 “당신이 퍼뜨리는 것(루머)이 질병보다 더 휠씬 위험하다”며 가짜 치료제(진달래추출물·forsythia)를 이용해 재물을 탐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클램워드를 비판한다. 루머가 무서운 것은 단순히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만 아니다. 루머가 확산되면, 국민들이 보건당국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은 물론, 감염병 저지를 위한 당국의 통제 노력이 먹히질 않게 된다. 아울러 보건당국이 보유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의 사회 대혼란은 물론, 2015년 메르스 상황에서 국민들의 건강 피해와 함께 사회경제적으로 무려 10~20조원(한국경제연구원 기준)의 손실이 초래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마지막으로 보건당국과 보건의료인 스스로에 대한 격려와 칭찬이다. 초기 사태 대응은 어느 조직이라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부족하지만, 중앙 보건당국은 물론, 지자체 모두 신종 감염병의 추가 발생에 대비해 토론 및 실행 기반 훈련을 실시해왔고, 나름 인력과 역량도 강화해온 게 사실이다. 영화 컨테이젼에서 애틀랜타 소재 CDC에서 북쪽 미네소타주로 역학조사를 떠난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는 자신이 감염된 것을 직감한 후,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도 자신과 접촉한 사람 보호 및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해 숙소 호텔로 연락해 접촉자 관리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역학조사를 위해 감염에 노출되면서 수면부족과 과로에 지쳐가는 대응인력이 적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격려하는 게 필요하다. 반목과 갈등은 신종 코로나가 가장 반길 엔자임(enzyme·효소)이다.

*박기수 교수 주요약력

-고려대 의과대학 환경의학연구소 교수
-WHO 감염병 대응 외부합동평가(JEE) 등재위원
-(전) 보건복지부 부대변인
-보건학·신문방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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