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안전 지켜야…하지만 압수수색 막아 진실 규명 어렵게 해선 안 돼”

환자단체연합회, 정부 가이드라인 제정에 “환자안전·피해자 증거 확보 함께 보장해야” 최근 10년간 영장 신청부터 집행까지 전수조사…현장 수색·진료기록 확보 구분 요구 의료사고 수사 전반으로 제한 확대 반대…환자단체 참여 공식 협의체 촉구

2026-11-03     최은택 기자
[사진=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정부가 응급실 압수수색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 가운데 환자단체가 응급환자의 안전과 의료사고 피해자의 증거 확보 권리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응급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응급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3일 성명을 내고 “의료진이 안심하고 응급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의료사고 피해자의 진실 규명 기회는 함께 보장돼야 한다”며 정부 가이드라인에 반영할 기준과 제정 절차를 제시했다.

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계기로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등 의료계는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필수의료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의 원칙적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연합회는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보호하기 위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의 진실 규명과 증거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영장 발부와 집행 방식 적정성은 구분해야”

연합회는 우선 응급실의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영장 집행을 주문했다. 심정지·호흡부전·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에서는 짧은 처치 지연도 생명과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의료진의 응급처치를 방해하거나 진료용 컴퓨터·장비 사용을 제한해 환자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가 가이드라인 제정에 앞서 실제 압수수색 실태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10년간 응급실 압수수색 영장의 신청·청구·발부·집행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응급실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과 진료기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구분해 살펴야 한다는 제안이다.

아주대병원 사건에 대해서도 현장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실제 집행 방식의 적정성을 나눠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경찰의 영장 신청과 검사의 청구, 법원의 발부 경위를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살피고, 집행 과정에서 응급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이 충분히 보호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임의제출이나 별도 전산실을 통한 자료 확보 등 증거의 원본성과 무결성을 보장하면서 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대체 방법이 가능했는지도 검토 대상으로 꼽았다.

연합회는 “적법한 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집행 방식의 적정성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응급실도 예외 장소 될 수 없어…증거 인멸 우려 땐 신속 확보”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수사기관의 증거 확보가 갖는 중요성도 짚었다.

연합회는 핵심 진료정보 대부분을 의료기관이 작성·관리하는 반면 피해 환자와 유족은 이에 접근하기 어렵고, 민사소송에서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고 설명했다. 형사고소는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이면서 피해자가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고 사고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의무기록 원본과 수정 이력·접속기록, CCTV 영상, 의료기기 기록 등은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거나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의제출로 충분하고 신속한 증거 확보가 가능하다면 이를 우선 검토할 수 있지만, 범죄 혐의와 수사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증거 제출 거부·누락이나 변경·인멸 우려가 있다면 필요한 압수수색을 제한하거나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집행 여부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사실상 결정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진의 과실이나 범죄를 단정해서도 안 된다”며 객관적 증거와 적법절차에 따른 공정한 수사를 강조했다.

가이드라인에 안전·증거 보존·사후 검증 등 6가지 기준 제시

연합회는 가이드라인에 담아야 할 기준으로 △환자안전과 진료 연속성 △증거의 신속한 확보와 원본 보존 △진료공간과 증거 확보의 분리 △피해 환자·유족의 권리 보장 △개별적 필요성과 비례성 △집행의 기록과 사후 검증 등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환자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현장 의료진과 집행 방식을 협의하되, 사전 협의를 영장 집행의 필수 요건으로 삼거나 증거 확보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증거는 원본 또는 원본과 동일하게 복제한 자료를 확보하고, 필요하면 디지털 포렌식으로 원본과의 일치 여부와 변경·훼손 여부를 검증하도록 요구했다. 가능한 경우 전산실이나 기록 보관장소 등에서 진료시스템을 중단하지 않고 자료를 확보하되, 진료공간에서 직접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거나 변경·인멸 우려가 있다면 환자안전 조치 아래 필요한 범위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안전을 이유로 압수수색 범위를 줄이거나 집행을 연기하더라도 증거의 삭제·변경·인멸을 막기 위한 적법한 보존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피해 환자와 유족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안내할 것도 요청했다.

집행 이후에는 환자안전 조치와 실제 진료에 미친 영향, 영장 집행 경위, 증거 확보 과정을 기록·점검해 진료 차질뿐 아니라 부당한 수사 지연이나 증거 확보 부실 여부도 함께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정부만 협의해선 안 돼…피해자 목소리 들어야”

가이드라인의 범위가 의료사고 수사 전반으로 확대되는 데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연합회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의료계 입장을 반영한 수사·압수수색 관련 가이드라인을 경찰청과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응급환자 보호를 위한 기준이 의료사고 수사를 제한하거나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의료계 입장만 반영해 수사와 증거 확보를 제한하면 피해 환자와 유족은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받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제정 과정에서는 의료계와 수사·법률·응급의료·환자안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뿐 아니라 환자단체가 추천한 사람이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피해 환자와 유족이 겪은 증거 확보의 어려움과 진료기록의 진실성 문제, 수사 지연에 따른 피해를 직접 듣고 초안 공개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시행 후에는 환자안전과 증거 확보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연합회는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숨진 어린 환자와 사망 경위를 알고자 하는 유족이 있다”며 “정부는 치료받는 환자도,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족도 소외시키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