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수급 불안 반복…"국가 공급망 관리체계 강화해야"

원료 해외 의존·생산기반 약화…산업계 “설비 투자 지원·비축 확대·약가 우대 필요”

2026-10-19     최은택 기자

의약품 수급 불안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해열제나 항생제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부터 분만유도제, 소아응급경련치료제, 희귀난치질환치료제까지 공급 차질이 이어지면서 의약품 수급 불안이 상시화되는 모습이다.

의약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공급이 중단되면 환자의 치료 공백으로 직결된다. 그럼에도 시장 규모가 작거나 경제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되는 사례가 적지않아 기업의 자발적인 생산 확대만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품절 사태를 계기로 의약품 공급망을 국가 차원의 보건안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산업계는 “공급 불안을 조기에 파악하는 관리체계와 함께 생산설비 투자 지원, 비축 확대, 약가 우대 등 기업이 안정적인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수단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인도와 일본처럼 핵심 원료와 필수의약품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생산기반 확보에 직접 투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챗GPT]

직접 대체할 의약품 없는 경우 58.4%…항생제 자급도 취약

의약품 품절의 원인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생산시설의 문제와 품질관리, 원료 부족, 물류 차질,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 기업의 생산 중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최근 국내 의약품 품절 현상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내부 공급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으며, 코로나19 이후에는 원료 공급 차질과 수요 증가의 영향도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품절 의약품 가운데 동일 성분·함량·제형으로 직접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이 없는 경우가 58.4%에 달해, 공급 차질이 곧바로 치료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면에는 공급망의 취약성과 생산의 경제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필수의약품은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가격 경쟁이 치열한 품목이 적지 않다. 원료와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 생산비용이 상승하더라도 이를 약가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설비와 인력을 계속 유지할 유인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심각한 대목이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00년 이후 대체로 30% 안팎에 머물다가 2022년에는 11.9%까지 떨어졌다. 항생제 원료 공급망은 더욱 취약하다.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페니실린계 항생제의 원료 자급률은 사실상 0% 수준이며,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 원료 자급률도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원료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단기간에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페니실린계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는 교차오염 방지를 위해 별도의 생산시설과 공조설비 등이 필요해 생산기반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결국 원료 생산기반이 한번 축소되면 위기 상황에서 단기간에 복원하기 어렵다.

결국 의약품 품절 문제는 특정 품목의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완제의약품 생산기반과 원료 공급망, 비축체계, 생산의 경제성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 산업계의 분석이다.

해외 주요국은 의약품 공급망을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닌 보건안보와 경제안보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의 PLI(Production Linked Incentive, 생산연계 인센티브) 제도이다. 이 제도는 인도 정부가 제약산업 등 부문에서 자국을 글로벌 제조업 허브로 육성하고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도입한 파격적인 보조금 정책이다. 선정된 기업이 인도 현지 공장에서 제품 생산 및 매출을 늘리면, 그 매출 증가분의 일정 비율(대개 4~10%)을 정부로부터 인센티브로 제공받는다.

일본은 항균제 및 기타 필수의약품의 제조 설비를 현대화하거나 신규 설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메이지 세이카, 시오노기 등 주요 제약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조 설비를 확충했으며, 2023년 이후에는 생산된 제품의 비축과 함께 대체 공급원 확보를 위한 지원으로 확장됐다. 또한, 일본은 항생제 자급화를 위해 550억 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 주요 제약사를 통해 항생제 제조 설비를 확충하고 생산 능력을 복원했다. 주요 제약사가 세파졸린 나트륨 등 항균제 제조 설비를 현대화하는데 정부 지원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생산 능력을 회복하고 자급화를 추진 중이다.

공적 공급 확대 추진…장기 생산 유인 뒷받침할 정책 패키지 요구

우리나라 정부도 반복되는 의약품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확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필수의약품에 대한 정부 주도의 공적 공급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부터 해외에서 환자가 직접 구매하던 희귀·필수의약품을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긴급도입 품목으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41개 품목 이상을 순차적으로 편입할 계획이다. 국가필수의약품의 주문제조 사업 확대와 국내 생산 기반 지원도 추진한다.

정부는 또한 공급중단이나 공급 부족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을 조기에 파악하고, 필수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약가 및 생산지원 정책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약가제도 개편에서는 원료 자급화와 생산기반 유지 등 정책적 우대가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약가를 대폭 우대하고, 10년 이상의 우대기간을 보장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항생제 주사제와 소아용 의약품 등도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한 품목으로 새롭게 고려됐다.

그러나 산업계는 보다 근본적으로 국내 의약품 수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생산기반 자체를 유지·확충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설비 투자와 제조기술 개발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가 그것이다. 필수·공급확보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생산라인을 신설하거나 증설하고 노후 설비를 교체할 경우 정부가 보조금, 정책금융, 세액공제 등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히 항생제처럼 별도의 전용 생산시설이 필요하거나 환경·폐수처리 시설 등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품목은 일반적인 기업 투자와 동일하게 접근해서는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둘째, 비축체계 확대를 꼽는다. 모든 의약품을 비축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체가 어렵고 공급 차질 발생 시 환자 치료에 미치는 영향이 큰 필수의약품을 선별해 적정 재고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특히 항생제 등 감염병이나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단기간에 공급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품목은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해 일정 수준의 비축물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산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약가 우대 등 인센티브 현실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원가 상승과 생산시설 유지 비용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약가를 합리적으로 보상하고, 공급 안정에 기여하는 품목에는 별도의 가산이나 우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원료 자급화와 생산기반 유지가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68% 수준의 약가 우대와 10년 이상의 우대기간을 적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의 단기적 약가 보상에서 벗어나 생산기반 유지를 장기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산업계는 이러한 약가 우대가 실제 기업의 생산 확대와 설비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공급망 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품절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생산 차질 문제가 아니라 낮은 수익성, 원료 해외 의존, 생산기반 약화 등 구조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특히 페니실린계 항생제 원료 자급률이 사실상 0%이고 세팔로스포린계도 30% 수준에 그치는 현실은 우리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공급 불안을 조기에 파악하는 관리체계와 함께 생산설비 투자 지원, 비축 확대, 약가 우대 등 기업이 안정적인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수단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인도와 일본처럼 핵심 원료와 필수의약품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생산기반 확보에 직접 투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