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뒤 치료 문턱은?…복지위 첫날 국감, 보건정책 빈틈 따졌다
임신중지 비용·판촉 수수료·고령층 예방접종 쟁점
정부, 입법 정비·관리 강화 약속…시행 일정과 재원은 과제로
의약품을 허가해도 비용 때문에 필요한 때 쓰지 못하고, 지원 제도가 있어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빠진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정감사 첫날에는 보건정책과 의료현장 사이의 간극을 짚는 질의가 이어졌다. 의원들은 제도 도입 취지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실제 이용 여건과 재정, 관리·감독 체계까지 갖추라고 요구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임신중지 관련 입법 공백 해소와 근거가 부족한 비급여의 목록 삭제, 의약품 유통 실태 분석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고령층 백신 전환과 희귀질환 진단 지원 보완 방침을 설명했다. 다만 일부 사안은 추가 검토나 예산 협의가 필요해 구체적인 시행 시점이 제시되지 않았다.
미프진 도입, 법률 정비부터 사후 관리까지
임신중지 의약품을 둘러싼 질의는 허가에 앞서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도입 이후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형법·모자보건법·약사법 정비와 안전한 진료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관련 법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불법 구매와 가짜 의약품, 잘못된 복용과 부작용 관리 부재가 여성 건강을 위협하고 있어 허가를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미프진 등 의약품을 허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한 시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가 22곳이고, 한 곳만 있는 곳도 33곳이라며 지역별 접근성 개선을 요구했다.
남 의원은 산부인과 의원 1329곳 가운데 병상이 없는 곳이 990곳이라는 자료를 제시하며 원내 투약과 장시간 관찰을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데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 장관은 허가와 위해관리계획이 구체화되면 관찰 방식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원내 투약 의무화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내놓지 않았다.
같은 당 전진숙 의원은 약값뿐 아니라 사전 검사와 사후 관리까지 포함한 비용 부담, 비밀 보장과 상담 기준을 짚었다. 정 장관은 안전한 사용을 위한 보호 체계를 준비하고 비용 지원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장기간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송구하다고 생각한다”며 “신속하게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서 입법 공백을 메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직권 등재에 대해서는 법적 요건과 다른 의약품과의 형평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근거 부족한 진료 퇴출…유통 차익도 점검 요구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부담을 키우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비급여를 퇴출하고, 비급여 가격 관리와 건강보험 수가의 원가 보전, 건강보험·실손보험 심사 연계를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일부 비급여만 관리하면 다른 시술로 진료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장관은 의료기술 재평가 결과를 검토해 급여·비급여 목록에서 직권으로 삭제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과 법적 절차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험업법 개정을 통한 정보 연계와 공동 심사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다만 가격 관리와 수가 원가 보전 요구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의약품 판촉영업자(CSO)와 병원 간납사의 거래 구조도 쟁점이었다. 남인순 의원은 CSO 실태조사에서 약 2만개 조사 대상 중 응답한 곳이 2% 정도에 그쳤고, 위탁계약서 약 98만건을 확보하고도 분석 결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이 제시한 사례에서는 건강보험 상한금액이 한 정당 1164원인 의약품의 판촉 수수료가 700원으로 약 60%에 달했다. 정 장관은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보고 “전산 등을 이용해서 조사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간납사에 대해서는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낮추는 것만으로 공급 차익과 배당·기부금으로 이어지는 이익 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장관은 12월까지 진행하는 실태조사를 토대로 지분율 규제 이외의 관리 수단을 검토해 내년 초까지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재난적 의료비 지불보증 지원금이 특정 병원과 질환에 집중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지원 규모가 167억6000만원으로 2021년보다 10배 이상 늘었지만,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에는 빈틈이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자료 분석으로 오남용·부정수급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선별하고 필요하면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어르신 접종 개선, 조달 일정과 추가 예산이 관건
질병관리청을 향한 질의에서는 고령층 예방접종의 효과와 전환 일정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65세 이상 폐렴구균 백신을 다당백신에서 단백결합백신으로 바꾸는 구체적인 시행 시기를 물었다. 임 청장은 새로 65세가 되는 어르신과 기존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국비 282억원을 증액한 정부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접종 시작 시점은 빠르면 2027년 4월로 예상했다. 다만 예산 확정과 조달 계약 등을 거쳐야 하며, 구체적인 일정은 내년도 예산안이 최종 확정된 뒤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고면역원성 인플루엔자 백신은 도입 절차와 재원 문제가 함께 제기됐다.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은 예방접종전문위원회의 재심의 없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75세 이상 대상 단계적 도입 계획이 담겼다고 비판했다. 임 청장은 전문위원회가 자문 성격의 기구이며 도입 결정은 질병관리청이 한다고 설명했다. 안건 제목이 달라도 관련 전문가 논의는 계속됐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고령층에서 표준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조기 전환을 요구했다. 임 청장은 중증화와 사망 예방 효과는 있지만 감염 예방 효과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 의원은 이 결과가 예방접종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임 청장은 75세 이상부터 고면역원성 백신을 접종하려면 약 198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며 재정 당국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독감 유행과 주의보 발령 사이의 시차도 지적했다. 8월 중순부터 유행했지만 경보는 9월 중순에 이뤄져 고위험군의 검사비와 약값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임 청장은 유행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개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고 보고 쌓여도 예방은 미흡…진료 영상 유출 질타
환자 안전 분야에서는 사고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 위험을 찾아 조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국민의힘 이소희 의원은 복지부 내 환자안전 전담 조직을 법률에 명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사망 사고 의무보고 확대와 지자체 통보, 사고·분쟁·민원 정보 연계도 주문했다. 정 장관은 분석과 후속 조치의 중요성에 동의하며 전문 조직과 인력을 확충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의료사고 형사특례 확대의 근거도 따져 물었다. 의료인 기소 규모로 인용된 통계의 해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형사처벌 위험이 필수의료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를 확인한 연구를 요구했다. 정 장관은 의료사고 안전망은 이전부터 논의해 온 사안이라며 하위 법령과 집행 과정에서 환자 안전과 권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산부인과 진료와 성형외과 수술, 병실 생활 영상이 인터넷에 노출된 사례를 제시했다. 의원실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만 80건이고 피해자는 100여 명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불법 영상의 신속한 차단과 유출 경로 확인, 의료계와의 보안 강화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기한은 제시하지 않았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기증된 피부 조직이 고가의 미용 시술에 사용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인체조직의 비영리 원칙 위반 소지를 조사하고, 관계 부처의 관리·감독과 부당수익 환수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원 밖 희귀질환자, 지역 응급실 운영난도 쟁점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실제 의료비 지출이 적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문제가 지적됐다.
김윤 의원은 2025년까지 희귀질환 지정 신청 610건 중 약 20%가 의료비 관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지정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고가 치료제를 쓸 형편이 안 돼 의료비가 적게 나온 환자까지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지정 기준은 조금 재검토가 돼야 될 것 같다”며 질병관리청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서미화 의원은 희귀질환 진단기관의 지역 접근성 보완을 요구했다. 임 청장은 현재 진단 지원사업 참여 의료기관이 34곳이며, 2027년 전남대병원을 추가 지정하는 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지역의료 질의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의료 책임과 취약지 운영난이 함께 거론됐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곳이 33곳이라며 혜택에 걸맞은 공적 역할을 요구했다. 정 장관은 병원별 수익성과 응급의료 책임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취약지에는 예산과 수가 가산을 병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은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과 국립대병원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정 장관은 국립대병원 특화 발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중장기 계획과 재정 계획, 예비타당성조사를 함께 검토하고 정책금융 지원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산업 지원에서는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이 새로 도입하려는 ‘도약형’ 제약기업의 혜택이 충분한지 따져 물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과 약가 우대 외에 조세·시설 특례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정 장관은 기업 유형별 지원 대책을 더 촘촘하게 설계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