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시선] 굳이 왜?…유연계약 두고도 부담 큰 환급제 유지하는 복지부
환자 선지출·공단 행정비용·제약사 수수료·세금 부담 제도 도입 취지보다 운영의 합리성 살펴야
더 간편한 제도를 도입하고도 모두에게 번거롭고 부담이 큰 기존 방식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보건복지부와 보험당국이 약가유연계약제를 도입하고도 환급형 위험분담계약(RSA)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는 현 상황을 두고 하는 하는 말이다. 두 제도의 도입 목적이 다르다는 복지부의 설명만으로는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제약사가 떠안는 부담까지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이중약가제도인 약가유연계약제는 올해 4월 도입됐다. 과거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됐던 유사한 방식의 리펀드제도나 환급형 위험분담계약이 새로 제도화될 때조차 논란이 컸던 터라, 약가유연계약제가 이렇게 속전속결로 제도권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다. 올해의 ‘사건 아닌 사건’이라 할 만하다. 여기엔 이른바 트럼프 약가제도로 불리는 ‘MFN(최혜국대우)’ 이슈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복지부와 보험당국은 약가유연계약을 도입하고도 기존 환급형 위험분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약가유연계약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더 번거롭고 불합리한 방식을 굳이 남겨둘 이유가 무엇인가.
복지부는 이에 대한 뉴스더보이스의 서면질의에 “두 제도의 운영 목적은 상이하다”면서 “별도 제도로 운영 예정”이라고 답했었다. 위험분담제는 임상적·재정적 불확실성이 있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제약사가 재정적 위험을 분담하는 조건으로 등재를 지원하는 제도이며, 환급형 외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와 달리 약가유연계약제는 국내 도입 신약 등의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해 국내 신약 도입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유사한 방식이지만 도입 취지가 다르니 따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의 목적이 다르다는 설명은 운영 방식까지 달리해야 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특히 환급형 위험분담제가 약가유연계약제와 비교해 환자뿐 아니라 제도 운영자인 건보공단, 제약사까지 모두 번거롭게 하고 부담을 지우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먼저 더 내고, 한참 후에 돌려받는 환자
약가유연계약 약제는 고시된 보험약가가 아닌 별도로 합의한 실제가격을 기준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환자가 의약품 비용을 지불할 때 실제가격보다 더 내지 않으므로 나중에 차액을 돌려받는 절차도 필요 없다.
반면 환급형 위험분담 약제는 환자가 고시된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나중에 실제가격과의 차액을 돌려받는다. 이 자체로 번거로운데, 더 큰 문제는 비용 지불 시점과 환급 시점 사이에 1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데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초기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 비용을 치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나중에 돌려받을 돈까지 먼저 부담해야 한다. 환자 본인부담을 지원하는 실손보험 영역에서도 환급형 위험분담 약제는 환자와 보험사 간 다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돌려줄 돈이라면 처음부터 더 받지 않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이미 그런 방식의 제도를 도입해 놓고도 환자에게 선지출과 환급 신청의 부담을 계속 지우는 이유를 복지부는 설명해야 한다.
차액 정산에 들어가는 품과 추가 지출
건보공단도 부담이 크다. 제약사로부터 보험약가와 실제가격 간 차액을 돌려받고, 환자에게 환급해 주기 전에 본인부담상한제 등 다른 제도와의 중복 적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환급이 필요한 환자를 찾아 해당 사실을 통지하고, 환자가 신청하면 환급금을 지급하는 데도 많은 품이 든다. 행정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약사 역시 분기마다 건보공단이 환급액을 통지하면 차액을 돌려주는 일을 반복한다. 전액 본인부담 환자의 경우에는 건보공단이 아닌 제약사가 차액을 환급해야 한다. 그런데 법령상 제약사가 환자에게 직접 환급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이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나 단체를 활용한다. 환자에게 돌려주는 비용 외에 수수료 부담까지 지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약사는 실제 수입보다 큰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도 부담한다.
가령 보험약가가 바이알당 1억원이고 실제가격은 7000만원인 항암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제약사가 이 의약품 한 바이알을 판매해 얻는 실제 수입은 7000만원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7000만원이 아닌 거래가격 1억원을 기준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런 불공정한 부과 방식에 대해 제약계는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행 환급형 위험분담제는 약가유연계약제와 비교해 환자에게는 초기 비용과 환급 절차를, 건보공단에는 행정비용을, 제약사에는 반복 정산과 수수료·세금 부담을 지우는 '다중부담' 이중약가제도인 셈이다.
신규 선택권부터 기존 계약 전환까지
위험분담제에 환급형 외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위험분담제 전체와 약가유연계약제의 목적이 같다는 주장도 아니다. 쟁점은 환급형 계약의 가격 운영 방식을 더 간편하고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데도 왜 기존 방식을 고수하느냐는 데 있다.
그런데도 도입 취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가격 운영 방식을 따로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행정이다. 제도의 이름과 도입 배경보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 누가 어떤 부담을 지는지 살펴야 한다.
복지부는 이제라도 환자와 건보공단, 제약사 모두에게 이로울 게 확신한 제도 개선을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신규 위험분담계약 약제에는 유연약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미 환급형 계약이 체결된 약제는 서둘러 유연약가로 전환해야 한다.
더 나아가 환급형 위험분담 약제뿐 아니라 환급형 계약 없이 총액제한만 적용하는 약제 등 다른 위험분담 유형에도 유연약가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총액제한 적용 약제 역시 고가의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다. 약가유연계약제의 도입 취지인 국내 도입 확대와 관련해, 이들 약제에 도입 또는 공급 유지의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겠는가.
더 간편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도 모두에게 부담이 큰 방식을 유지하는 행정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두 제도의 운영 목적은 상이하다”는 답변을 넘어, 굳이 환급제를 그대로 둬야 하는 이유에 정부와 보험당국은 답해야 한다. 그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면 서둘러 바꾸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