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석 꽉 채운 환자들의 외침…“목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안기종 대표 『환자샤우팅카페』 출간 북콘서트…의료사고 피해 가족·전문가·여야 의원 한자리 환자안전법 제정부터 선택진료제 폐지까지…“당사자의 경험이 변화 이끌어”
“당사자의 목소리를 당사자가 직접 내는 것이 가장 큰 울림을 줍니다.”
16일 오후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의료사고 피해 가족이 어렵게 말을 이어가자 150석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사고 이후의 막막했던 시간을 꺼냈고, 오랜 세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을 돌본 아버지는 지난 20년을 되짚었다.
이날 열린 『대한민국을 바꾸는 환자들의 목소리, 환자샤우팅카페』 출간 기념 북콘서트는 저자인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개인적으로 마련한 행사다. MBC 김형기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고, 의료사고 피해 가족과 환자안전 전문가, 여야 국회의원 등이 무대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환자의 외침이 어떻게 사회적 공감을 얻고 법과 제도를 움직였는지를 돌아봤다. 고(故) 정종현 군의 투약 오류 사고에서 출발한 환자안전법 제정 과정과 선택진료제 폐지에 영향을 미친 영준 씨 가족의 사연도 다시 조명됐다.
“전문가보다 환자의 말에 더 귀 기울여”
김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전문가의 연구와 정책 제안만으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제도가 환자의 목소리를 통해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김 의원은 “전문가가 수많은 연구를 하고 토론회에서 발표하거나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설명해도 잘 들어주지 않던 이야기를 환자의 목소리로 전달하면 훨씬 더 많은 공무원과 정치인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거나 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당사자가 직접 내는 목소리가 가장 큰 울림을 준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2000년 무렵부터 환자안전 문제를 연구하고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제안했지만, 10여 년 동안 별다른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던 중 정종현 군 사건을 계기로 환자와 가족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관심이 환자안전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목격했다.
그는 최초 환자안전법 초안에는 중대한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 알리는 방안과 환자안전사고 실태조사, 관련 조직 설치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핵심 내용이 빠졌고, 최초 제정된 법에는 일부 형체만 남았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드러난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스템을 바꿔 환자안전사고 자체를 줄이려면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며 “이 책이 새로운 시작과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꺼낸 사고의 기록
정종현 군의 어머니 김영희 씨가 마이크를 잡자 행사장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2002년생인 정종현 군은 여섯 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약물치료만 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3년 넘게 치료를 이어갔다. 그러나 치료 일정의 막바지에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안으로 잘못 투여되는 사고를 겪었다.
김 씨는 “종현이를 보내고 나니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몰랐다”며 “여러 곳을 찾아갔지만 안타깝다는 말뿐,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안기종 대표에게 연락했다. 김 씨는 처음 통화에서 약 2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했다.
그는 “그 힘든 이야기를 안 대표가 모두 들어줬다. 그것이 정말 컸다”며 “그 뒤로 방법을 계속 함께 찾아보자고 했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 줬다”고 회상했다.
병원은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를 추진했다. 그러나 합의서에는 민·형사상 소송을 다시 제기하지 않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김 씨는 “종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에 그런 내용에는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며 해당 문구를 제외한 뒤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가 자료를 모으면서 같은 유형의 사고가 이전에도 발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 관련 논문도 발표돼 있었다.
그는 환자샤우팅카페 무대에 올라 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그 자리에서 같은 사고를 막을 환자안전법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씨는 “첫 번째 샤우팅카페에서 청중이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울어준 것이 큰 위로가 됐다”며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해서는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배제했다”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이를 성숙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처벌이 아니라 다음 사고를 막자는 외침”
안기종 대표는 김 씨가 처음부터 형사고소나 의료진 처벌보다 재발 방지에 뜻을 뒀다고 했다.
안 대표는 “누군가 먼저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를 이야기하고 예방대책을 만들었다면 종현이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며 “누구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외침은 샤우팅카페를 거치며 여러 사람의 공감으로 번졌다.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도 그 과정에서 힘을 얻었다.
안 대표는 “한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전에는 볼 수 없던 상황이 생겼다”며 “현장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제도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전문가와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를 단순한 비전문가가 아니라 의료현장을 경험한 당사자이자 전문가로 바라본 연구자들이 힘을 보탰고, 언론이 환자들의 사연을 사회에 전하면서 공감대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모기만 잡을 게 아니라 웅덩이를 없애야”
이상일 교수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뒤 환자와 의료진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지에만 논의가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환자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사고 이후의 분쟁 해결에 집중하는 방식을 모기 문제에 빗대 설명했다. 모기에 계속 물리는데 방 안에 들어온 모기만 잡으려 할 뿐, 장구벌레가 들끓는 웅덩이는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는 취지다. 사고가 발생한 뒤의 갈등만 다룰 것이 아니라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면 분쟁이나 소송의 전체 숫자도 줄어들 것”이라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거나 덜 발생하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과 헌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종현 군 사고 이전에도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 사례가 논문으로 발표됐지만 널리 알려지거나 재발 방지 대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종현 군 가족이 입법 활동을 벌이는 동안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이름조차 남지 않았던 20년의 고통
영준 씨 아버지도 무대에 올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들이 병상에서 보낸 긴 시간이 묻어났다.
영준 씨는 2007년 2월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었다. 가족은 간단한 수술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선택진료 의사가 수술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수술 이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당시 영준 씨는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키 188㎝에 몸무게가 100㎏에 가까웠고, 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달한 학생이었다는 게 아버지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에는 병원을 옮겨 다니는 생활이 이어졌다. 몸에 맞는 침대를 별도로 제작해 병원을 옮길 때마다 화물차에 실어 날라야 했다.
영준 씨 아버지는 “영준이의 이름을 다시 수면 위로 띄워 여러분이 알 수 있게 해준 안기종 대표에게 감사드린다”며 “고등학교 2학년 말의 모습 그대로 병상에 있는 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영준 씨 가족이 오랜 기간 목소리를 냈고 그 과정이 선택진료제 폐지에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환자와 가족의 이름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집필하면서 제도 변화의 출발점이 된 환자와 가족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환자안전에 모든 것 건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소희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자신의 의료사고 경험을 털어놨다.
이 의원은 “저도 15세 때 척추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며 “저 역시 말할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했을 때, 환자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환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환자들의 마음을 살피면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들이 직접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인식 개선뿐 아니라 정책을 입안하는 데도 훨씬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북콘서트는 과거의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150석을 빈틈없이 채운 참석자들은 환자와 가족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자리를 지켰다. 무대에서는 이미 제도를 바꾼 목소리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함께 나왔다.
환자는 객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을 말했고, 그 외침이 법과 제도를 어디까지 움직였는지를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