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약 배송 철회 청원, 11일 만에 5만명 동의로 성원

청원인, 건보재정 악화·의약품 오남용·플랫폼 종속 우려 제기 취약계층 접근성 대안으로 ‘공공 방문약료’ 제도화 요구

2026-09-15     최은택 기자

비대면 약 배송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동의 개시 11일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성원됐다.

1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공개 내용을 보면, ‘비대면 약 배송 정책 전면 철회에 관한 청원’은 14일 기준 5만2929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은 지난 3일 동의를 받기 시작했으며,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동의기간은 다음 달 3일까지였다.

청원인은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 및 약 배송 확대가 의약품 오남용과 의료 쇼핑을 조장하고 건강보험 재정과 지역 보건의료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책을 전면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의료 취약계층의 편의를 정책 확대의 근거로 내세우는 데 대해, 고령자와 거동 불편자에게 필요한 것은 영리 플랫폼을 통한 의약품 배송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보건소·지역 약국이 연계된 대면 중심의 방문약료와 돌봄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비대면 약 배송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동의 개시 11일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성원됐다. [사진=챗GPT]

“비급여 의약품 쇼핑·최저가 경쟁 우려”

청원인은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이 탈모·여드름 치료제와 인공눈물 등 비급여 의약품의 처방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치료제 역시 애플리케이션에서 의료기관 진료비와 약국 판매가격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상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약사들의 비대면 약 배송 반대를 이익단체의 이해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내놨다. 청원인은 비대면 조제에 관리료 가산이 적용되지만 약물 오남용 증가, 배송 과정의 변질 사고, 지역 보건망 약화, 플랫폼 종속 등의 문제를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단일 건강보험체계와 비교적 촘촘한 의료기관·약국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의료 접근성이 낮거나 민간보험 중심인 국가와 여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명의 도용·건강정보 유출 가능성도 제기

건강보험 재정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도 청원 내용에 포함됐다.

청원인은 비대면 환경에서 외국인이나 타인의 건강보험 자격을 도용하거나 대리 수령, 급여 의약품 사재기·밀반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산 수가를 기반으로 의료 이용이 늘어나면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봤다.

플랫폼 서버에 진료 내역과 상병 코드, 복약 정보 등 민감한 건강정보가 집중되면서 정보 유출이나 상업적 활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청원인은 국회에 비대면 약 배송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고, 약사 사회의 문제 제기를 이해관계 수호로 규정하는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동 불편자와 취약계층의 의약품 접근성은 영리 플랫폼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 중심의 공공 방문약료 서비스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청원은 성원 요건을 충족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 절차를 밟게 됐다.

한편 비대면 진료 처방 의약품의 배송 범위를 놓고 약사사회와 환자·소비자단체는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공적 전자처방전달시스템과 안전관리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며 현행 취약계층 중심의 제한적 재택수령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소비자연맹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모든 비대면 진료 이용자에게 배송 선택권을 보장하되, 의약품별 운송기준과 배송업체 등록제, 전 과정 추적체계, 사고 책임 및 처벌 규정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