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58종 연간 초과비용 7.6조원…환자 1명당 5180만원
직접의료비만 4.5조원…확진까지 평균 20개월·31%는 오진 본인부담액, 가구소득의 55%…가족 돌봄 부담도 가중
국내 희귀질환 58종으로 발생하는 연간 사회경제적 초과비용이 약 7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환자 1명당 연간 초과비용은 약 5180만원으로, 연구 비교집단에서 확인된 당뇨병 환자의 비용 부담보다 약 10배 높았다.
3일 글로벌 컨설팅사 찰스리버어소시에이츠(CRA)와 국제 희귀질환 환자단체 연합체 레어디지즈인터내셔널(RDI)이 공동 수행한 ‘한국의 희귀질환이 미치는 영향(Impact of Rare Diseases in South Korea)’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대상 58개 희귀질환의 추정 유병인구는 약 14만6500명이다.
연구에는 희귀질환 환자 92명과 만성질환자를 포함한 비교집단 103명을 대상으로 한 구조화된 설문조사가 활용됐다. 희귀질환 임상 전문가 2명과 정책 전문가 2명의 인터뷰도 병행됐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KORD)는 공동 저자로 연구 설계와 결과 해석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KORD와의 인터뷰를 통해 설문 설계와 결과 해석을 보완했다. 의료비뿐 아니라 기존 행정자료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삶의 질, 생산성 손실, 본인부담의료비와 돌봄 부담 등 비의료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직접의료비 60%…비의료비·생산성 손실도 2.7조원
전체 연간 초과비용 가운데 직접의료비가 약 4조5000억원으로 60%를 차지했다. 직접의료비에는 처방의약품, 입원·외래·전문진료, 진단검사, 응급실과 구급차 이용, 의료기기, 장기요양, 방문진료 및 정신건강서비스 비용 등이 포함됐다.
교통비와 숙박비, 유급 돌봄, 주거환경 개선 등 직접비의료비는 약 1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22%였다. 결근과 근무 중 생산성 저하, 근로시간 단축, 조기 퇴직 등에 따른 생산성 손실은 약 1조원으로 13%, 조기 사망에 따른 생산성 손실은 약 4000억원으로 5%를 차지했다.
연구진은 직접비의료비와 생산성 손실이 건강보험 및 급여 의사결정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측정되거나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희귀질환이 환자와 가족, 사회에 미치는 실제 부담이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연구 결과는 58개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한 표본 분석으로, 전체 희귀질환에 대한 국가 단위 추정치가 아닌 참고자료로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질환별 국내 표본이 작은 점을 고려해 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5개국의 1인당 비용을 통합한 뒤 치료 영역별 평균비용을 국내 유병률에 적용했다.
확진까지 평균 20개월…오진 환자 비용 2배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0개월이었다. 환자별 진단 기간은 1개월부터 최대 253개월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확진 전까지 평균적으로 일반의 2명과 전문의 2명을 거쳤으며, 일부 환자는 의료진을 최대 10명까지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의 31%는 한 차례 이상 오진을 경험했고, 19%는 두 차례 이상 오진을 겪었다. 오진 경험 환자의 중위 사회경제적 비용은 오진을 경험하지 않은 환자보다 약 2배 높았다.
최근 진단받은 유전성 희귀질환 환자 가운데 71%가 최근 1년 안에 유전자검사를 받았지만, 같은 기간 유전상담을 받은 비율은 50%에 그쳤다. 보고서는 유전자검사 인프라와 검사 결과 해석·상담 서비스 사이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진단 이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는 평균 4개월이 추가로 소요됐다. 환자별로는 1개월에서 최대 46개월까지 걸렸다. 환자의 96%는 치료 접근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주요 장애요인은 희귀질환 관련 서비스 승인 지연 44%, 거주지역 내 전문의 부족 35%였다.
환자의 78%는 의약품 관련 접근 장벽을 경험했다. 비급여 또는 고가 치료제에 따른 비용 부담이 20%, 치료 시작 지연이 19%로 나타났다.
희귀질환 환자의 응급실 이용률은 비교집단보다 약 13배 높았다. 건강 관련 삶의 질을 나타내는 EQ-5D 점수는 희귀질환 환자가 0.73으로 비교집단 0.89보다 약 18% 낮았다.
본인부담, 가구소득 절반 넘어…가족 돌봄에 부담 집중
희귀질환 환자 가구의 본인부담의료비는 평균 가구소득의 55%에 달했다. 비희귀질환 가구보다 소득 대비 부담 수준이 약 11배 높았다.
본인부담의료비 중 입원 및 시술 비용이 24%, 유급 돌봄서비스와 주거환경 개선 등 질환 관련 비용이 14%, 의약품 비용이 10%를 차지했다. 민간 실손보험 등 추가 보장이 없는 가구의 본인부담비용은 추가 보장을 보유한 가구보다 약 3배 높았다.
전문진료기관 방문에는 평균 2시간 이상이 걸렸고 농어촌 환자는 평균 3시간이 소요됐다. 비수도권 환자가 지역 내 전문 의료인력 부족을 경험한 비율은 56%로 수도권 환자 31%보다 높았다.
희귀질환 환자 가구는 연평균 약 2개월에 해당하는 근로일수를 잃는 것으로 조사됐다. EQ-5D 점수가 0.75 미만인 환자 가구의 연간 평균 생산성 손실은 약 1440만원으로, 점수가 0.75 이상인 가구의 850만원보다 컸다.
돌봄 제공자의 75%는 무급 가족 돌봄 제공자였다. 60%는 환자의 전문진료에 동행하기 위해 근무나 학업을 중단하거나 휴가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돌봄 제공자의 81%는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재정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91%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고, 83%는 돌봄 부담으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진단·급여·지역의료·돌봄 아우른 6대 과제 제시
연구진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6가지 정책 우선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조기·정확한 진단을 위해 전문 진단 역량과 전문인력 교육, 표준화된 의뢰체계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오진이 해소되면 환자 1명당 연간 약 570만원, 실제 오진 경험 환자에게서는 약 2030만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일차의료 단계의 희귀질환 인지도를 높이고 진단 전 의료기관 방문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진단 전 의료기관 방문 횟수를 줄이면 환자 1명당 연간 약 1450만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치료제와 지원서비스에 적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실제임상근거 활용과 비용효과성 기준의 유연한 적용, 위험분담제 확대도 주문했다. 급여평가에서 임상적 효과뿐 아니라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경험, 생산성 손실과 사회경제적 영향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문의료기관과 일차·지역사회 진료의 연계를 강화해 응급의료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방 가능한 응급실 이용을 절반으로 줄이면 환자 1명당 연간 약 1230만원, 전문진료기관까지 이동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면 약 7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돌봄 제공자 지원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장기요양보험 적용 범위를 희귀질환 환자까지 확대하고 방문간호, 재활, 돌봄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득보전과 유연근무 지원, 비수도권 가정에 대한 휴식지원과 상담·돌봄 연계 확대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현재 추진 중인 희귀질환특별법과 100일 급여등재 절차, 지정 희귀질환 확대 정책이 제도 개선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단과 의뢰체계, 치료 접근, 진료 연속성, 지역 간 접근성, 돌봄 지원을 환자 여정 전반에서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이탈리아계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 키에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와 정책 제언은 연구진의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졌으며, 보고서에 제시된 견해는 연구비 지원기관이나 자문 참여 기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영석 의원-희귀질환단체, 기자회견 통해 연구결과 공개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희귀질환 질병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제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희귀질환 환자의 진단·치료 지연과 경제적·돌봄 부담을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며 전문 진료체계 및 권역별 전문기관 역량 강화, 지역 의료기관과 전문기관을 연결하는 의뢰체계 구축, 진단 이후 치료 개시까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서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희귀질환 치료제 100일 급여등재 절차가 실제 치료 개시 기간 단축으로 이어지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재 이후에도 제한적인 급여기준이나 복잡한 절차로 치료가 지연되는 사각지대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비 지원을 넘어 환자와 가족의 돌봄·고용·소득·일상생활을 연계해 지원하는 통합체계 마련도 제안됐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시간뿐 아니라 가정과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전 과정을 하나의 정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관련 정책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희귀질환관리법을 비롯한 제도를 정비하고, 별도기금 도입을 포함한 안정적인 재원과 전담 거버넌스 구축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단부터 치료와 돌봄까지 환자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입법·재정적 보완 방안을 검토하고, 신속 등재와 환자 접근성 개선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살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