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진단 20개월·치료까지 또 10.6개월…“기다림 줄여야”
서영석 의원·환자단체, 진단·치료·돌봄 연계와 안정적 재원 마련 촉구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 7조6000억원·환자 1인당 5180만원 추정
희귀질환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약 20개월, 진단 이후 실제 치료를 시작하기까지는 평균 10.6개월이 추가로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귀질환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7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희귀질환 질병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제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겪는 진단·치료 지연과 경제적·돌봄 부담을 알리고, 현행 정책의 제도적 사각지대와 개선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 의원은 “진단과 치료의 지연, 경제적 부담과 돌봄의 어려움을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의료비 넘어 이동·돌봄·생산성 손실까지 분석
이날 제시된 내용은 글로벌 연구기관 CRA가 국내 희귀질환의 질병부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서 의원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도 연구 과정에 참여해 환자들이 처한 현실과 정책 과제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는 희귀질환의 부담을 의료비에 한정하지 않고 진단·치료 지연과 가족 돌봄, 경제활동 중단 및 생산성 손실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국내 58개 희귀질환으로 인해 비교군보다 추가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7조6000억원, 환자 1인당 연간 추가 비용은 약 5180만원으로 추정됐다.
이 비용에는 의료비뿐 아니라 환자가 진단과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는 데 드는 비용, 장거리 이동, 환자와 가족의 경제활동 중단, 무급 돌봄과 생산성 손실 등이 포함됐다.
서 의원은 “7조6000억원은 환자 개인만의 비용이 아니다”며 “희귀질환의 부담을 환자와 가족에게 맡겨둘 때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치르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짊어지는 돌봄 부담도 상당했다. 연구에서는 가족 간병의 약 75%가 별도 보상 없이 이뤄지는 무급 돌봄으로 나타났다.
“진단 방랑 최소화하고 치료 개시까지 관리해야”
서 의원은 희귀질환 정책에서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약 20개월이 걸렸고, 진단을 받은 뒤 실제 치료를 시작하기까지도 평균 10.6개월이 추가로 소요됐기 때문이다.
그는 “희귀질환 환자에게 이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며 “치료가 늦어지는 동안 건강이 악화되고, 한 번 진행된 장애나 기능 저하는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시된 첫 번째 과제는 진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희귀질환 전문 진료체계와 권역별 전문기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의료기관에서 전문기관으로 환자를 신속하게 연결하는 의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환자가 여러 병원과 진료과를 전전하는 이른바 ‘진단 방랑’을 최소화하고, 진단 과정과 소요 기간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두 번째 과제는 진단 이후 실제 치료가 시작될 때까지의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기존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 의원은 이 같은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신속 등재가 실제 치료 개시로 이어지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재 이후에도 지나치게 제한적인 기준이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치료가 지연되는 사각지대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의원은 “희귀질환 정책은 등재 기간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아니라, 환자가 얼마나 빨리 정확한 진단을 받고 필요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지, 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실제 얼마나 줄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수가 적어 임상적·경제적 근거를 축적하기 어려운 희귀질환의 특성을 정책 결정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적기 치료를 놓쳐 발생하는 장애와 돌봄 부담, 가족의 경제활동 중단 등 사회적 비용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의료비 지원 넘어 가족의 고용·소득·일상 포괄
세 번째 과제로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포함하는 통합지원체계 마련이 제시됐다.
서 의원은 “희귀질환은 한 사람의 질병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가족의 돌봄과 고용, 소득과 일상생활까지 한 가정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의료비 지원을 넘어 돌봄·고용·복지 등 환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도 “현재의 희귀질환 정책은 진단과 치료, 의료비 지원을 중심으로 나뉘어 있어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총장은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시간을 넘어 가정과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전 과정을 하나의 정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관련 정책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희귀질환관리법을 비롯한 제도를 정비하고, 별도기금 도입을 포함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과 전담 거버넌스 구축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며 “환자의 수가 적다고 해서 한 사람과 한 가족이 감당하는 질병의 무게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진단부터 치료, 돌봄까지 환자의 전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살펴보고 필요한 입법·재정적 보완 방안을 적극 논의하겠다”며 “정부의 신속 등재와 환자 접근성 개선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