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1] KRPIA “혁신신약 국내 급여까지 평균 47개월”…선등재 후평가 제안

최근 10년간 국내 급여율 20%…항암제 22개월·희귀질환약 31개월 소요 경제성평가 생략 요건 완화...선별급여·적응증별 가치평가 도입도 주문

2026-08-24     최은택 기자

[① 혁신신약 급여·약가제도]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혁신신약이 국내 환자에게 건강보험 치료제로 제공되기까지 평균 4년가량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글로벌 혁신신약 가운데 국내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은 비율도 약 20%에 머물렀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간한 ‘국민 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KRPIA 정책제안서’에서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진입을 앞당기기 위해 선등재 후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제도의 적용 요건을 완화하고 선별급여와 적응증별 가치평가를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혁신신약을 우선 급여하되 사후평가와 약가 조정, 차액 환급으로 건강보험 재정 위험을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국내 급여율 미국 88%·독일 58%와 격차=21일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혁신신약 가운데 한국에서 공적보험 급여를 적용받은 비율은 약 20%였다.

같은 조사에서 미국은 88%, 독일 58%, 일본 53%, 프랑스 42%, 영국은 40%였다. 국내에서 건강보험에 진입한 신약도 허가받은 전체 적응증이 아닌 일부에만 급여가 적용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글로벌 최초 출시부터 국내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47개월이었다. 글로벌 출시부터 국내 허가까지 24개월, 국내 허가 이후 건강보험 적용까지 23개월이 소요됐다.

최근 5년간 국내 허가일부터 건강보험 등재일까지 걸린 기간을 별도로 분석하면 항암제는 평균 약 22개월, 663일이었다. 희귀질환치료제는 약 31개월, 952일이었다.

항암제의 평균 등재기간은 2021년 22.5개월, 2022년과 2023년 각각 19.3개월, 2024년 20.2개월에서 2025년 27.7개월로 늘었다. 희귀질환치료제는 2022년 14.1개월에서 2023년 32.5개월, 2024년 38.6개월, 2025년 45.6개월로 길어졌다. 2026년은 25.6개월로 제시됐다.

국내 건강보험 총약품비에서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2022년 기준 13.5%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9%, A8 국가 평균 38.0%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민 1인당 혁신신약 지출액도 한국은 76달러로 미국 1357달러, 독일 389달러, 프랑스 334달러, 일본 251달러보다 적었다.

임상적 유용성 확인 뒤 먼저 급여=KRPIA가 제시한 선등재 후평가는 심사평가원이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하면 외국 평균가격 범위 안에서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후 제약사가 심평원·국민건강보험공단과 비용효과성평가와 약가협상을 마치고, 최종 평가가격과 앞서 지급된 금액의 차액을 환급한다. 치료 기회는 먼저 제공하면서 건강보험 지출은 사후 정산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심평원의 임상적 유용성 평가와 건보공단 약가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급여 고시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협회는 다수 위원회의 검토와 보완 요구가 반복되고 보완 횟수에도 제한이 없어 전체 등재기간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허가 후 6개월 이내 제약사가 제시한 가격으로 임시 급여한 뒤 1년 안에 비용효과성평가와 약가협상을 거쳐 최종 약가를 결정하고 있다. 일본은 건강보험 등재 신청 후 약 90일 안에 원가와 해외가격을 바탕으로 약가를 우선 정하고, 재정 영향을 사후 평가한다.

KRPIA는 선등재 후평가를 도입하면 항암제 약 21.7개월, 희귀질환치료제 약 31.2개월에 달하는 허가 후 등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봤다.

희귀질환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의 검토기간도 240일에서 100일로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2027년에는 암 등 중증·난치질환 혁신신약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2028년에는 신속등재 후평가·조정 트랙을 혁신신약 전반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선등재 후평가가 새로운 약가 인하 장치로 작동하지 않도록 사후평가 기준과 약가 조정 방식의 예측 가능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성평가 생략 ‘200명·해외 3개국’ 요건 손질=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제도도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제도는 대체 치료제가 부족한 중증·희귀질환자의 신약 접근을 앞당기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환자 수 200명 이하, 해외 3개국 이상 급여 등재 등 형식적 요건이 엄격하게 적용돼 치료가 시급한 환자가 제외될 수 있다는 게 협회의 판단이다.

최근 국가 간 약가를 참조해 낮은 가격을 적용하려는 최혜국대우(MFN) 환경이 강화되면서 유럽 등 주요국의 신약 등재도 늦어지고 있다. 임상적 가치와 무관한 해외 급여 지연이 국내의 해외 3개국 등재 요건과 맞물려 한국 환자의 접근까지 늦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KRPIA는 환자 수와 해외 등재 국가 수 요건을 개선해 대체 치료제가 없거나 제한적인 중증·희귀질환자의 치료 기회 상실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본인부담 차등하고 적응증별 환급률 조정=비용효과성이나 재정 영향의 불확실성 때문에 즉시 전액 급여하기 어려운 혁신신약에는 선별급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암 등 중증질환 산정특례 대상자의 본인부담률은 약 5%, 희귀질환과 중증난치질환 대상자는 통상 10%다. 신약이 급여화되면 건강보험이 약제비의 90∼95%를 부담하기 때문에 같은 재원으로 더 많은 치료제를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협회는 진단했다.

KRPIA는 질환 중증도와 대체 치료제 유무, 임상적 가치 등을 고려해 본인부담률을 10∼50%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액 비급여 치료제를 건강보험 제도 안으로 먼저 편입하되 지원 수준을 탄력적으로 정하자는 취지다.

동일한 의약품도 적응증별로 치료 효과와 환자 수, 대체제 유무, 미충족 의료수요, 재정 영향이 다른 만큼 적응증별 가치평가 시범사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위험분담계약이 적용된 의약품은 표시약가인 상한금액을 유지하면서 적응증별 가치와 재정 영향에 따라 환급률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 임계값도 질환의 위중도와 특성에 맞춰 차등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과 간병 부담, 생산성 손실 등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배경은 KRPIA 회장은 발간사에서 올해 하반기 시행을 앞둔 보건복지부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환자 접근성 확대와 혁신 가치 보상의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제도가 본래 취지에 맞게 정착하려면 지속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