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상비약 규제 완화 즉각 중단해야...안전관리 강화가 우선"
대한약사회, 품목 확대·취약지 판매 규제 완화에 공식 반발 "공공심야약국 의무화·취약지 공공약국 설립이 근본 대안"
약사단체가 정부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와 보건의료취약지 내 24시간 판매 규제 완화 방침에 대해 "국민 건강보다 편의성을 앞세운 정책"이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대신 공공심야약국 확대와 보건의료취약지 공공약국 설립을 통해 의약품 접근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대한약사회는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지금은 일반의약품 안전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시기"라며 "정부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및 규제 완화 시도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령화 시대, 약사 상담 필요성 더 커져"
약사회는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자와 다제약물 복용자의 증가를 들어 일반의약품 판매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약물 상호작용과 부작용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의약품을 임의 복용할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임상적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이른바 '오버도즈(OD) 파티'를 통한 약물 남용, 졸음운전 사고, 자해·자살 시도 등 사회적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도 근거로 제시했다. 약사회는 스웨덴이 일반 소매점에서 아세트아미노펜 판매를 허용한 이후 약물 남용과 중독 사고가 증가하자 제도 시행 6년 만인 2015년 정제 형태 아세트아미노펜의 소매점 판매를 중단하고 약국 판매로 전환했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고려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연구팀의 2020년 연구를 인용하며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시행 이후 약국 외 경로를 통해 취득한 아세트아미노펜 급성 음독 환자의 발생 빈도와 노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판매업소 94~97% 규정 위반…관리부터 강화해야"
약사회는 정부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논의하기에 앞서 현행 제도 관리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사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1000여 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한 결과, 판매자 등록기준 및 준수사항을 1건 이상 위반한 업소 비율은 2022년 95.7%(957개소), 2023년 94.1%(988개소), 2024년 94.4%(991개소), 2025년 97.2%(1004개소)에 달했다.
약사회는 "국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우선해야 할 일은 품목 확대가 아니라 부실한 판매·관리 실태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2016~2018년 추가 지정이 추진됐던 지사제(디옥타헤드랄스멕타이트)의 사례도 언급했다.
약사회는 해당 성분이 이후 중금속 위험성 문제로 2019년 만 2세 미만과 임산부 금기 성분이 됐고, 최근에는 소아·청소년 적응증 삭제와 만 19세 미만 복용 제한으로 허가사항이 변경됐다며 안전상비약 확대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공공심야약국 242곳 불과…의무화 필요"
약사회는 접근성 문제의 해법으로 공공심야약국 확대를 제안했다. 약사회는 우리나라의 약국 접근성이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취약 시간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공공심야약국 확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 공공심야약국은 242개소로 정부 예산은 약 57억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공공심야약국은 단순히 의약품 판매 기능을 넘어 약사의 복약지도와 약물 상담,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 감소, 야간 처방조제, 전화 상담 등 지역사회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약사회는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지역 편차가 심하다"며 "약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역별 일정 수 이상의 공공심야약국이 배치·유지되도록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정부 예산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약국이 운영 중인 시간에는 일정 생활권 내 편의점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제한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취약지는 공공약국이 근본 대안"
보건의료취약지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약사회는 취약지역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이면서 만성질환과 다제약물 복용 비율이 높아 약사의 상담과 약물 관리가 오히려 더 필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확대하는 대신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공공약국을 설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공공약국에서는 약사가 고령층의 비대면 진료를 지원하고 약물 이력과 건강 상태를 의사에게 전달해 보다 안전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며, 진료 후 즉시 조제와 복약지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문약료, 다제약물 관리,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약사회는 정부가 언급한 보건의료취약지역 약 556곳을 고려해 공공약국 600개를 설치할 경우 연간 약 600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취약지 의료 접근성 개선과 고령층 약물 부작용 감소, 불필요한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규제 완화 강행 시 책임은 정부"
약사회는 정부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와 규제 완화를 강행할 경우 발생하는 국민 건강 피해와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약사회는 "공공심야약국 확대, 보건의료취약지 공공약국 설립, 일반의약품 안전관리 강화 등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적극 수용해 국민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의료계 중심의 정책 추진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과 가장 가까운 약국과 약사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