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의료비 지원 '가족 기준' 손본다…부양의무자 요건 폐지 수순
정부, 2027년부터 단계적 적용…환자단체는 차등 지원기준 개선도 요구
정부가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환자 본인이 지원 요건을 충족해도 부모나 자녀의 재산 때문에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환자단체는 더 나아가 단계적 폐지에 그치지 말고 즉각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일부 희귀질환에만 적용되는 차등 기준도 손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생명존중 복지국가, 대체불가 대한민국' 실현을 위한 2026년 하반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2027년 간병비·인공호흡기 지원 대상질환과 극희귀질환부터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기준을 없애고, 2028년에는 이를 전체 희귀질환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질병청은 이를 통해 환자 개인의 경제적 상황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개편해 의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이번 발표는 특히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같은 날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제기한 시점과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치료비 한 푼 안 보태도 가족 재산 때문에 탈락"
연합회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은 것도 부양의무자 기준이었다. 현행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은 환자 본인의 소득·재산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등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도 함께 심사한다. 이 때문에 환자가 지원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문제는 부양의무자로 분류된 가족이 실제 치료비나 생활비를 지원하는지는 심사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과 왕래가 끊겼거나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환자도 가족의 재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연합회의 설명이다.
연합회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거나 완화되는 흐름인 만큼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도 같은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권익위와 인권위에는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기준을 폐지하고 환자 본인의 경제적 여건과 치료 필요성을 중심으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제도 변화에 따른 영향을 고려해 2년에 걸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는 방침인 데 반해, 연합회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지금도 고액 치료비 부담을 안고 있는 만큼 시행 시기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유지현 연합회 회장은 "환자가 실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데도 가족의 소득과 재산만으로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은 환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4대 희귀질환 특례도 재검토 필요"
연합회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함께 일부 희귀질환에만 적용되는 차등 지원기준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은 혈우병, 고쉐병, 파브리병, 뮤코다당증 등 이른바 '4대 희귀질환'에 일반 희귀질환보다 완화된 소득·재산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환자가구 소득기준은 일반 희귀질환이 기준 중위소득 140% 이하인 반면 4대 희귀질환은 160% 이하까지 인정된다.
서울지역 4인 가구 기준 환자가구 재산기준도 일반 희귀질환은 4억8389만8920원이지만 4대 희귀질환은 16억1299만6400원으로 약 3.7배 높다.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재산 기준 역시 4대 희귀질환이 더 완화돼 있다.
연합회는 이러한 기준이 2001년 제도 도입 당시의 치료환경을 반영한 결과지만, 현재는 다양한 희귀질환에서도 고가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는 만큼 특정 질환만 우대하는 기준을 유지할 이유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4대 희귀질환을 제외한 1400여 개 희귀질환 환자 가운데 실제로는 고액 치료비를 부담하면서도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원 기준을 질환명이 아니라 치료 필요성과 의료비 부담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