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포성 없는 전쟁' 중?…쇄신 드라이브에 조직 술렁

홍승권 원장, 7월 정기인사서 실장급 고위직 8~9명 반년만에 보직 재배치 내부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상임이사 공석 속 조직 안정화 요구 커

2026-06-30     최은택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포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4월 홍승권 원장 취임 이후 이어져 온 조직 내부의 긴장감이 7월 정기 인사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신임 원장의 강한 쇄신 의지와 기존 조직의 전문성이 충돌하면서 내부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29일 뉴스더보이스 취재 결과, 홍승권 원장 취임 이후 심평원 내부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새 원장이 업무를 하나씩 점검하며 변화와 쇄신을 강하게 주문하는 반면, 오랜 기간 구축된 조직 운영 방식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내부 구성원들은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면서 양측의 온도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홍승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지난달 임직원에게 배포한 취임 한달 소회 글에서 “산모가 새벽에 전화 한 통으로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분만실이 가까이에 있는 나라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심평원의 기준은 서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어야 한다. 분만실 앞에서 거절당하는 산모가 없는 것, 그것이 제가 말한 기준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라며 임직원들에게 변화에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사진은 지난 4월 13일 원주 본원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 모습.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문가 조직은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업무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만큼 시스템은 정교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관료적이고 변화 속도가 더디게 보일 수 있다.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온 수장은 손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홍 원장 역시 조직 전반의 쇄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심평원에서 수십 년간 심사·평가 체계를 구축해 온 내부 인력들은 일부 변화 시도를 전문성과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상주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 내부에서는 원장의 업무보고 방식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한 심평원 관계자는 "업무보고 때 고위직들에 대한 담금질이 상당하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돈다"며 "업무보고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말도 있고,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과 주문이 이어진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심평원 관계자들은 이번 7월 정기 인사 결과는 이런 보이지 않는 알력이 표면화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이번 인사에서는 승진자를 포함해 모두 19명의 1급 인사가 발령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9명이 올해 1월 발령받은 보직에서 다시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양성준 조사운영실장은 인재경영실장으로, 정선호 강원본부장은 홍보실장으로, 김한정 인재경영실장은 경기북부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기원 홍보실장은 경기남부본부장으로, 황대능 급여관리실장은 부산본부장으로, 김종봉 약제관리실장은 전남광주본부장으로 재배치됐다.

또 임상희 심사평가연구실장(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장 겸임)은 DUR관리실장으로, 박춘선 전남광주본부장은 심사평가연구실장으로 이동했다.

반년만에 이처럼 많은 1급 간부가 다시 보직을 바꾼 것은 심평원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는 평가다. 심평원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 "혼란의 도가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리자 인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조직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관료 조직은 결국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만큼 지나치게 잦은 보직 변경은 조직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원장의 업무 스타일을 놓고도 내부 평가는 엇갈린다. 한 관계자는 "연구자나 시민사회 활동가의 방식이 조직 운영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 내부에서 제기되는 '쇄신'과 '아마추어리즘' 논란도 결국 이 지점에서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직 안팎에서는 지금 필요한 것은 고위직에 대한 강도 높은 담금질보다 조직 안정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심평원은 현재 기획상임이사, 보험수가상임이사, 심사평가상임이사 등 상임이사 3명이 모두 공석이다. 후임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공석은 2~3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며, 인선도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심평원 관계자는 "일각에서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은 원장이 대규모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없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는 점"이라며 "이번 인사는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고, 생각보다 여진도 오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평원은 앞으로 국정과제와 보험수가 개혁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해야 한다"며 "지금은 무엇보다 조직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다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인사를 기존 관행을 깨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쇄신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인사가 조직 혁신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지, 아니면 내부 갈등만 키우는 '화근'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홍 원장에게 시급히 필요한 건 직원들의 불안을 해소하면서 유연하게 조직을 장악하는 연착륙 전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