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탈모 위축감 말하기 전, 희소질환 아이들의 삶부터 보라”

서이슬 PROS환자단체 대표, KT증후군 등 보장성 실태 고발 “산정특례 있어도 비급여엔 무용…보조기·신발까지 자부담”

2026-06-30     최은택 기자

[현장=탈모보다 생명]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 저하가 건강보험 보장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왜 선천성 희소질환 환자들은 여전히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까.”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29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물었다. 정부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를 사회적 숙의 의제로 올린 데 대해, 희소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이 먼저 묻고 싶은 것은 건강보험의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29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 저하가 건강보험 보장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왜 선천성 희소질환 환자들은 여전히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사진=한국환자단체연합회]

서 대표는 KT증후군, 즉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으로 투병 중인 환아의 엄마다. 한국PROS환자단체는 KT증후군을 포함한 선택성 희소 복합 혈관 이형성 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이 모인 단체다. 서 대표는 흔히 ‘복합 혈관 기형’으로 불리는 이 질환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기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함의를 잘 알기 때문에 그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KT증후군은 국내 환자가 500명 남짓인 희소질환이다. 완치법은 없고 일부 증상 완화 약물이 시험적으로 사용되는 수준이다. 정맥, 모세혈관, 림프 등 혈관계 여러 요소가 과도하게 자극돼 몸 곳곳에 모반과 정맥류가 생기고, 팔·다리 한쪽이 커지고 길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서 대표는 “남다른 외모로 인한 불편한 시선과 위축감, 사회적 차별, 삶의 질 저하는 제 눈에는 예쁘기만 한 아이가 지금껏 내내 겪어온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 논의와 KT증후군 보장성 현실을 직접 비교했다. KT증후군의 대표 증상인 화염상 모반을 옅게 만드는 레이저 시술은 평생 단 6회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마저도 얼굴처럼 눈에 보이는 부위에 있어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에 한정된다는 설명이다.

서 대표는 “선천성 희소질환자인 KT증후군 환자들의 모반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니까 6번까지만 건보 적용해주고, 청년 탈모는 청년들이 위축되니까 건보 적용해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환자들은 적어도 10회 이상, 평균 수십 회 모반 레이저 치료를 받는데 6회까지만 건보 적용하겠다는 일괄 기준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정맥류 치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KT증후군 환자들은 평생 반복적으로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증, 보행 장애, 배양, 부종, 혈전증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지정맥류 시술은 비급여로 분류돼 있다.

서 대표는 “희소질환 코드로 산정특례 대상자가 되지만, 산정특례는 비급여 시술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아이는 모반이나 정맥 문제보다 다른 증상이 더 심각하다고 했다. 척추측만증, 다리 부피 차이, 발 모양 변형으로 인한 보행 불편, 림프액 축적으로 인한 출혈 때문에 일상생활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사회와 보건복지부 고시는 이 아이의 몸을 보고 혐오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며 “아이가 매일 아침 척추 보조기, 압박대, 압박 스타킹, 특수 맞춤 신발로 몸을 꽁꽁 싸매야 하는 모습을 보는 심정을 정부는 알고 있느냐”고 했다.

비용 부담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줄줄 새어나오는 림프액 섞인 출혈로 몇 시간에 한 번씩 거즈를 갈아치워야 하는 아이의 불편과 불쾌감을 아느냐”며 “척추 보조기 135만원, 압박 스타킹 12만원, 특수 맞춤 신발 50만원을 모두 오롯이 제가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개월간 아이 수술 소견을 받고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일을 더 늘렸다”며 “장애 등록을 해서 신발값이라도 아껴보고 싶지만 장애 등록도 안 되고, 실손보험도 당연히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서 대표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한국PROS환자단체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전체 응답자 74명 중 86.8%가 건강보험 적용 한계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누적 본인부담금이 1000만원을 넘는다는 응답은 40.8%, 3000만원을 넘는다는 응답은 19.7%였다. 3명 중 1명은 비용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룬 경험이 있다고 했다.

서 대표는 “청년 탈모의 사회적 영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아이와 같은 희소질환 환자들의 현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 희소질환자의 의학적 필요와 삶의 질을 중심으로 급여 기준을 전면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또 산정특례 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희소질환자에게 필요한 시술과 약제, 보조기, 신발 등 소모품에도 급여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 대표는 “건강보험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제도여야 한다”며 “제 주변에는 잦은 병원행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치료비 걱정에 쓰리잡을 뛰는 부모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미안해하는 어린 환자들도 있다”며 “지금은 성인이 된 한 회원은 설문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제가 먼저 치료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적었다”고 전했다.

서 대표는 끝으로 “청년들의 위축감과 삶의 질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 제도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삶을 위협받는 희소질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