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약, “건보료가 제약산업 지원금인가”…약가개편 공익감사 청구
“수조원 재정 영향 검증 없이 추진…건보재정 목적 외 사용” 희귀질환 신속등재·ICER 상향·비밀약가 확대 정면 비판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로 이어졌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비용효과성 평가 기준(ICER) 상향, 약가유연계약제 확대, 혁신형 제약기업 약가우대 등 개편안의 핵심 내용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보다 제약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투입될 수 있는 정책임에도 재정 영향과 정책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건약은 17일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서를 접수하고,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은 국민건강보험의 목적과 원칙을 훼손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제약산업 육성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감사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건약은 이번 개편안이 국민건강보험법상 목적인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보장 증진보다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과 ‘제약산업 생태계 전환’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책 효과와 재정 영향에 대한 객관적 검증 없이 추진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희귀질환 신속등재, 환자 안전 검증체계 약화”
건약이 제기한 첫 번째 문제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제도다. 건약은 현재 의약품이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유효성 평가와 함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임상적 유용성 및 경제성 평가를 거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편안에 포함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는 경제성 평가뿐 아니라 임상적 유용성 평가까지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어 사전 검증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약은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고가 치료제가 급여권에 진입할 경우 환자가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국가 책임이 약화될 수 있다”며 “그 위험과 부담은 결국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ICER 상향·사후평가, 재정관리 책임 방기”
두 번째 쟁점은 신약의 비용효과성 평가 기준인 ICER 임계값 상향이다. 건약은 ICER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건강보험이 더 높은 신약 가격을 인정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약제비 지출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부담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관련 재정 영향 분석이나 정책 효과 검증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지부가 제도 시행을 결정한 뒤에야 관련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도 문제로 꼽았다. 건약은 “국가재정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며 “수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 가능성이 있는 정책임에도 이에 준하는 검증 절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신속등재 확대의 보완책으로 제시한 치료성과 기반 사후평가 역시 아직 구체적 운영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비밀약가 확대는 투명성 훼손”
건약은 약가유연계약제 확대도 감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약가유연계약제는 공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을 다르게 운영하는 이른바 ‘비밀약가’ 방식이다. 현재는 일부 혁신 신약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바이오시밀러와 개량신약, 특허만료 의약품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건약은 “환자 접근성 확대와 직접 관련이 없는 품목까지 비밀약가 적용 대상을 넓히는 것은 국내 제약기업의 수출가격 유지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산업정책 성격이 강하다”며 “국민은 건강보험공단이 적정 가격으로 약가협상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보험자와 의료기관, 민간보험사까지 이중 가격체계를 관리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혁신형 제약 약가우대, 산업정책 재원 전용”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제네릭 약가우대도 주요 감사 청구 사유에 포함됐다. 건약은 동일 성분 제네릭 의약품은 생물학적 동등성을 입증해 허가받은 만큼 치료효과 차이가 없는데도 기업 유형에 따라 약가를 차등 적용하는 것은 건강보험 급여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우대는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비판했다.
건약은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 자산이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이 아니다”라며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근거로 약가 우대를 확대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 관리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건약은 감사청구서를 통해 이번 약가제도 개편방안의 정책적 타당성과 재정적 영향, 법령 및 요양급여 원칙과의 정합성, 건강보험 재정 운용의 적절성에 대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약은 “국민의 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 재정이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사원이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