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잇다…혈액암 환우들 울린 진심의 고백
환우회 창립 24주년 행사서 치료 여정·가족 사랑·생명나눔 조명 "오늘 하루를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응원 메시지 이어져
6월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주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아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3일 서울가족플라자에서 개최된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창립 24주년 기념행사' 현장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내일의 희망을 건네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이날 행사장에는 혈액암 환우와 가족, 환우회 대표 그리고 오랜 시간 이들의 곁을 지켜온 제약업계 관계자 등 각계각층의 참석자들이 모여 환우회의 스물네 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4년을 이어온 동행..."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 될 것"
안기종·이은영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공동대표의 환영사로 행사의 막이 올랐다. 두 대표는 감격 어린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환우회에 관심을 갖고 2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혈액암 환우와 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의 권익과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이어 행사 말미에는 환우회의 주요 활동 성과와 향후 비전 발표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환우회가 걸어온 길을 함께 돌아보며, 앞으로도 환우 가족들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생명 나눔은 한 가정을 지키는 일"…감동의 헌혈 유공자 표창식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세계 헌혈자의 날(6월 14일)을 맞아 의미 있는 표창식이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주인공은 지난해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아버지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사연을 가진 헌혈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헌혈을 시작해 현재까지 약 175회의 생명 나눔을 실천했다는 그는 "최근 아버지가 건강을 많이 회복하셔서 함께 등산을 가면 저보다 더 빨리 올라가신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치료 과정을 함께하며 헌혈과 조혈모세포 기증이 단순한 나눔을 넘어 한 사람의 삶과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며, “오늘 이 상은 제가 아닌 생명 나눔에 동참해 주신 모든 헌혈자와 기증자, 그리고 환우분들을 대신해 받는 것이다. 앞으로 300회를 목표로 기증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해 객석의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오늘 하루를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눈물바다 이룬 공모전 시상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창립 24주년 기념 ‘I AM LIVE, 살아있는 오늘을 응원해’ 공모전 시상식이었다. 투병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에 대한 감사와 희망을 담은 수상작들이 소개될 때마다, 행사장은 이내 거대한 위로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단상 위에서 수상자가 담담히 소감을 이어가는 동안, 객석에서는 환우와 보호자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과해 본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깊은 공감의 눈물이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 역시 가슴이 먹먹해져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야 할 만큼, 장내를 가득 채운 슬픔과 감동의 무게는 묵직했다.
특히 결혼식을 불과 3개월 앞두고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는 한 환우의 수상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기자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장 앞 로비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던 그를 우연히 마주쳤다. 과거 힘겨운 투병 생활을 거쳤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환한 미소의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오늘 상을 받는 환우라는 사실을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치료 종료 후 불과 한 달 만에 단상에 오른 그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막막함과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치료를 받으며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저는 혼자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투병 기간 동안 단 한순간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프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픈 몸을 붙들어 주고, 무너지는 마음을 일으켜 세워 주며,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또한 자신보다 먼저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환우들의 이야기가 희망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 환우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며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오늘 하루를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신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환우와 보호자분들께 작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우리의 오늘은 희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담겨 있었다. 한 수상자는 “부모님을 챙겨야 할 나이인데 오히려 저를 챙기게 해드려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수상자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싫어했던 형이 조혈모세포를 기증해 줬다”며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진심 어린 고백들이 이어지며 참석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웅크렸던 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암이라는 고통스러운 질병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지고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창립 24주년 기념행사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증명하듯 서로가 서로의 치유자가 되어주는 기적 같은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