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시선] 혁신형제약 인증, 혁신 키우려면 책임도 정교해야 한다
리베이트 근절 원칙은 지키되, 기업의 관리 노력과 개인 일탈 구분 필요
제약산업에서 리베이트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의약품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며, 궁극적으로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오랜 기간 강도 높은 규제를 유지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약업계 역시 과거와 달리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도입하고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면서 리베이트 근절에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리베이트 사건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기준 개정안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인증 심사 시 과거 리베이트 전력을 무한정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을 일부 수용해 5년 이전 위반행위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일정 부분 제도 개선의 의지는 읽힌다.
하지만 정작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인증 이후 발생한 리베이트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업의 책임 여부와 무관하게 인증 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리베이트를 옹호하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논란의 본질은 리베이트 처벌을 완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현행 기준이 안고 있는 불합리성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직원이 개인적으로 리베이트를 두 건만 제공해도 합계 금액이 500만원을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기준상 이 정도 규모의 위반만으로도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업이 아무리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해도 모든 개인의 일탈을 100%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상당수 제약사는 CP 운영, 정기 교육, 내부 감사, 익명 신고제도, 전산 모니터링 등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준법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직원이 규정을 어기고 개인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상황까지 완벽하게 막아내기는 어렵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퇴사한 직원이 고의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뒤 공익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만약 기업이 사전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관리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행정처분이 내려졌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상식적으로는 기업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안이다. 실제로 형사절차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이뤄진다. 수사기관은 개인의 일탈로 판단하고 회사의 조직적 개입이나 관리 소홀을 입증하지 못하면 기업을 기소하지 않는다. 즉 기업은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판단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별도의 행정처분이 내려지고, 그 결과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기업은 무죄인데 혁신기업 자격은 잃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리베이트로 인한 약가 인하나 업무정지 처분은 대부분 문제가 발생한 특정 품목에 한정된다. 위반행위와 제재 범위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은 다르다. 인증이 취소되면 기업이 보유한 전체 사업과 연구개발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약가 우대, 정부 지원사업 참여, 각종 정책적 인센티브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불이익이 발생한다. 사실상 특정 직원의 일탈이 회사 전체의 혁신 역량 평가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비례성 원칙 측면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기업에게 일정 수준의 관리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직원의 일탈"이라는 말 뒤에 숨어 조직적 리베이트를 정당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부통제가 부실하거나 사실상 묵인한 경우라면 엄중한 제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조차 따지지 않고 결과만으로 동일한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이러한 구분을 하고 있다. 산업안전, 환경, 금융, 공정거래 분야에서도 기업이 합리적인 예방조치를 취했는지,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했는지, 위반 사실을 인지한 뒤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최근 글로벌 규제 흐름 역시 단순 결과 책임보다 컴플라이언스 체계의 실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도 예외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규제가 아니라 육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책 수단이다. 정부 스스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하고, 혁신형 제약기업을 그 핵심 축으로 규정해 왔다. 그렇다면 인증 유지 기준 역시 육성 정책에 걸맞은 정교함을 갖춰야 한다.
단순히 위반 사실의 존재만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관리 책임 여부 ▲CP 운영 수준 ▲내부통제 체계 ▲재발 방지 노력 ▲위반행위의 규모와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칙이 강할수록 책임 판단은 더욱 정교해야 한다. 모든 사건을 일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책임이 있는 곳에 책임을 묻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가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인지, 아니면 예측하기 어려운 행정 리스크를 안기는 제도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개정안은 규제심사와 법제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 절차를 밟고 있다. 아직 제도 설계의 여지는 남아 있다. 정부가 이번 기회에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대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기업의 선량한 관리 노력과 개인의 일탈을 구분하는 보다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혁신을 요구하는 사회라면 혁신을 수행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책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규제와 육성의 균형이며, 지속 가능한 제약산업 정책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