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신속등재안에 업계 “접근성보다 사후관리 강화에 방점”

“5년 뒤 평가까지 기다리나”…대상 확대·예측가능한 사후평가 기준 요구 정부, 허가 후 100일 내 등재 목표…A8 3개국 이상 등재 약제 우선 검토

2026-06-04     최은택 기자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허가 후 100일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정부의 신속등재 시범사업안을 두고 제약바이오업계가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효성과 수용성은 더 따져봐야 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달 27일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 시범사업 운영계획을 공개했지만, 업계에서는 제도가 환자 접근성 개선보다 사후관리 강화에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업계는 시범사업을 조속히 시행해 문제점을 확인하고 본사업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면서도, 대상 약제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사후평가 부담을 과도하게 설계할 경우 기업들이 신속등재를 적극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열린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제약바이오업계는 환자 접근성 개선보다 사후관리 강화에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빠른 등재만으로는 부족…사후평가 예측 가능해야”

한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부안에 대해 "시범평가를 조속히 진행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한 뒤 본사업을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면서도 "정부 방향성은 제한적인 운영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어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허가와 급여평가를 동시에 검토하는 방식은 희귀질환 치료제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모든 신약에 대해 허가-평가 병행을 확대해 전체 검토 기간을 줄이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성 평가 기준도 합리화해 동시검토 절차 아래 경제성 평가도 신속히 검토될 수 있게 하고, 이런 과정이 불가능한 약제에 대해서만 사후평가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신속등재의 핵심 조건으로는 사후평가의 예측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회사는 불확실성을 안고 단지 등재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신속등재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후평가 결과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사후평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최대 10% 약가 인하, 3년 뒤 재평가에서 다시 미달할 경우 추가 최대 10% 인하 등 조정폭과 절차를 사전에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극희귀로 좁히면 취지 훼손…환자 진료 중심 선별해야”

대상 질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A8 국가 중 3개국 이상 등재 약제를 우선 검토 대상으로 삼는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외국에서 검증된 부분을 보자는 취지에서는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대상 질환을 극희귀질환 등으로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산정특례 희귀질환, 항암 희귀질환, 질환 특성이 있어 산정특례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희귀성이 인정되는 질환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또 "대체약제가 없거나 10년 이상 해당 질환에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경우 등 환자 진료 중심으로 대상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의약품을 신속하게 등재한다는 제도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청회 뒤 먹먹하고 답답…정합성·실효성·수용성 의문”

공청회 현장에서는 글로벌의약산업협회도 우려를 표했었다. 최인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전무는 당일 "공청회에 기대를 많이 하고 왔지만, 이후 드는 마음은 솔직히 굉장히 먹먹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 전무는 먼저 정합성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강조하며 제도 개선을 추진했을 때 업계는 실제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이날 발표된 안은 접근성 향상보다 사후관리 강화 제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벤치마크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희귀질환 신약 접근성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허가는 3분의 1 수준, 급여는 절반 수준인데 이런 모든 책임을 기업에만 두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최 전무는 "지금까지 여러 제도를 추진했지만 실제 환자들이 체감하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며 "오늘 발표한 사후관리 강화 조건을 보면 이 제도가 희귀질환 신약을 더 많이 국내에 도입할 수 있는 구조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용성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발표 내용을 보면 시범사업을 5년 정도 해야 하는 구조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이 제도가 5년 뒤 어떻게 갈지 예측하기 어렵고, 시범사업에 포함되지 않은 희귀질환 치료제는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도 수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된다"고 했다.

정부안은 ‘허가 후 100일 등재’…선등재 뒤 5년간 근거 축적

정부가 공개한 시범사업안의 핵심은 허가 전부터 급여평가 절차를 병행해 식약처 허가 이후 100일 이내 건강보험 등재를 추진하는 것이다.

현행 신약 등재 절차는 식약처 허가심사, 심평원 급여적정성 평가,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복지부 고시 절차를 거치며 통상 1년 안팎이 소요된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환자 수가 적고 임상 근거 축적이 어렵다는 특성을 고려해, 임상적 유용성 중심으로 먼저 등재한 뒤 급여 이후 실제사용자료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시범사업 대상은 A8 국가 중 3개국 이상에서 일정 기간 등재된 희귀질환 치료제가 우선 검토될 전망이다. 대체약제 유무, 질환 중증도, 신속 도입 필요성, 재정 영향 등이 함께 고려된다.

급여 이후에는 1~3년차에 실사용자료와 임상자료를 수집하고, 4년차에 제약사가 비용효과성 평가 자료와 실제근거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며, 5년차에 심평원이 사후평가를 통해 급여 유지, 약가 인하, 급여기준 조정 등을 검토하는 구조다.

약가는 A8 조정 최저가의 90% 수준을 검토하고, 총액계약도 병행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사후평가 결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약가 인하가 검토될 수 있고, 자료 미제출이나 불성실 제출 시 전액본인부담 전환 가능성도 거론됐다.

결국 쟁점은 속도와 관리의 균형이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빠른 등재와 근거 기반 사후관리를 병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사후평가 부담과 불확실성이 크면 신속등재 제도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신속등재는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여야 한다"며 "대상 범위를 환자 필요 중심으로 넓히고, 사후평가 기준과 약가 조정 원칙을 예측 가능하게 설계해야 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