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기본법 실질적 작동위해 환자정책국·통합지원센터·환자학회 필요”
안기종 대표, 심포지엄서 발제 예정...“하위법령에 환자 목소리 담아야”
환자기본법 시행을 1년 앞두고 환자정책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보건복지부 내 환자정책국 신설, 환자통합지원센터 설치, 환자정책 연구 기반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교육장에서 열리는 ‘환자기본법 제정 이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 ‘환자기본법 시대, 환자단체의 역할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발제할 예정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4월 28일 공포된 환자기본법의 실효성 있는 시행 방향과 하위법령 제정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환자기본법은 2027년 4월 29일부터 시행된다.
발제문을 보면, 안 대표는 발제문에서 환자기본법 제정의 의미를 “환자를 보건의료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정한 법”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환자와 환자단체가 정책 참여, 지원, 조직 신설 등을 요구할 때 정부로부터 “법적 근거가 없다”, “재정 근거가 없다”, “조직 근거가 없다”, “참여 근거가 없다”는 답변을 받아왔는데, 환자기본법이 이런 공백을 메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발제문에서 “그동안 환자는 보건의료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 또는 객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법률상 환자단체 정의가 없어 정부 법정위원회에 환자단체 몫으로 참여하기 어려웠고, 상당수 환자단체는 열악한 재정과 조직 여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나 자조모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환자기본법 제정 논의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2021년 환자기본법 제정 TF를 꾸리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2022년 입법토론회, 2024년 의료공백 사태 속 환자·가족 집회 등을 거치며 ‘의료공백 재발방지법’의 하나로 추진됐다.
남인순 의원은 2024년 12월 환자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후 환자안전법 내용을 통합한 법안을 2026년 1월 다시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올해 3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4월 28일 공포됐다.
특히 환자기본법은 기존 환자안전법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제정됐다. 안 대표는 이를 “환자안전법과 환자권리법이 합쳐진 것이 환자기본법”이라고 설명했다.
환자안전법은 2010년 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사망한 정종현 군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법이다. 국내에서 ‘환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첫 일반법으로 평가된다.
이번 법에서 매년 5월 29일을 ‘환자의 날’로 정한 점도 의미 있는 변화로 제시됐다. 5월 29일은 정종현 군의 기일이다. 안 대표는 “종현이의 희생을 기억하고 환자안전과 환자권리의 가치를 다시 새기는 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첫 번째 쟁점은 환자단체와 환자지원단체의 구분이다.
안 대표는 환자단체는 환자가 조직한 단체로, 환자지원단체는 보건의료인이나 의약품·치료재료·의료기기 공급자 등 환자가 아닌 자가 조직한 단체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지원단체가 특정 질환 의약품의 허가나 급여 등재 과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상업적 활동을 할 가능성, 이해관계자 지원으로 설립·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조사에서는 응답자 1,001명 중 903명(90.2%)이 환자단체와 환자지원단체를 구분해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안 대표는 “환자기본법상 환자단체 적용 범위에서 환자지원단체를 제외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보건복지부가 이를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쟁점은 등록환자단체 요건이다. 환자기본법은 등록환자단체가 되려면 환자의 건강과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며,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안 대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과 인력 기준이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등록환자단체 사업·활동·운영·시설 경비 보조, 환자정책연구사업 위탁, 환자단체 고유 업무 수행 지원 등을 통해 환자단체 활동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정책 기본계획의 차별성도 강조됐다. 안 대표는 환자정책 기본계획이 기존 보건의료 분야 기본계획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환자의 투병 지원과 권리 실현을 중심에 둔 별도 계획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정책위원회 구성과 관련해서는 소비자·시민·노동단체 추천 위원을 포함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기존 환자안전법상 국가환자안전위원회에는 노동계·비영리민간단체·소비자단체 추천 위원이 참여했지만, 제정 환자기본법상 환자정책위원회 구성 규정에는 이들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안 대표는 환자통합지원센터 설치 규정이 최종 법률에서 빠진 점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당초 환자단체연합회 제안안에는 환자의 투병 및 권리 증진을 종합적으로 상담하고, 환자단체 연결, 교육, 사회복귀 지원, 조사·연구, 정책 건의 등을 수행하는 환자통합지원센터 설치 내용이 포함됐지만, 예산 확보 부담과 기존 중앙환자안전센터·지역환자안전센터와의 관계 등을 이유로 삭제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기본법 시행 이후 추가 법 개정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설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안 대표는 서울시를 예로 들며 여성·가족·장애인·청년 등을 위한 공공 지원 거점은 존재하지만 환자를 위한 공공 통합지원 거점은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서울환자플라자’ 설치 필요성도 제안했다.
복지부 조직 개편 요구도 담겼다. 안 대표는 환자의 투병, 안전, 피해구제 업무를 담당할 환자정책과·환자안전과·환자피해구제과 등을 포함하는 ‘환자정책국’ 신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환자 중심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환자학회’ 창립 구상도 소개했다. 전문가 중심 연구를 넘어 환자의 경험과 요구를 반영한 연구 기반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안 대표는 발제문에서 “환자기본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하위법령, 기본계획, 시행계획, 위원회 참여, 환자단체 지원, 환자정책 연구 등을 통해 환자 중심 보건의료체계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이기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는다. 박성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환자기본법 하위 법령 제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할 예정이다.
패널토론에는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김소윤 연세대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조민우 울산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이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