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하] "투자는 결국 제도가 결정한다"…빅파마가 던진 제언

한국 기여도 반영한 평가체계 마련 등 제도개선 요구 예측 가능한 급여·약가 환경이 경쟁력 좌우

2026-06-09     권소희 기자

[기획] 한국을 선택한 빅파마…투자 유치의 조건
(상) 투자처가 된 한국, 글로벌 빅파마가 움직인다
(하) 인증만으론 부족하다, 투자 부르는 제도의 조건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확대 등 외국계 제약사에 대한 지원책을 논의 중인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들은 정부의 이러한 정책 기조를 적극 지지하면서도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제미나이]

'혁신형 제약기업' 관심 있지만…외국계 특성 반영한 기준 보완 필요

취재결과, 글로벌 제약사들은 정부가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업계와의 소통을 늘려가는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제도 운영 측면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평가 기준을 다르게 설계했음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며 "해외자본 유치나 공동연구 가산점 외에,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본사의 한국 내 R&D 투자 실적' 등은 반영되지 않았고, 의약품 수출 규모처럼 외국계 지사가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평가를 앞두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정부 MOU 체결, 협력 행사 개최 등 공을 들이고 있으나, 변경된 기준 하에 이 같은 노력이 얼마나 인정받을 지는 미지수”라며 “국내 바이오 생태계 육성을 위해 글로벌사의 유·무형 협력 성과와 투자 유치 과정에서의 지사 기여도가 평가에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행정예고 기간 중 의견 수렴을 거쳐 보완 가능성을 밝힌 만큼, 글로벌 제약사의 특성을 더 잘 반영한 기준으로 다듬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업계 한 대관 담당자도 "정부가 ‘외국계 혁신형 제약기업’ 유형을 신설하고 절대평가(65점 이상 지정) 방식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했으나, 실제 다국적 제약사의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평가지표와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많은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에서 활발히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사를 거치지 않고 글로벌 본사나 글로벌 CRO를 통해 직접 집행된 임상 연구는 '국내 R&D 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현재 검토 중이나 미정)"며 "이로 인해 실제 한국 의료계와 환자를 위해 막대한 임상 투자를 지속하고도,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이라는 진입 장벽에 가로막혀 인증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다국적제약사들의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라고 전했다.

또한 "한국 환자들에게 혁신 신약을 개발·공급해 온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 혁신형 인증을 받더라도 국내 허가, 보험급여 등재, 약가협상 등 핵심 과정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예: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경제성 평가 면제 또는 기준 완화 적용 등)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며 "따라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가 단순히 국내사의 약가인하 방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게, 말 그대로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기업들의 노력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지출은 '투자'…무형자산 가치와 약가(Pricing) 인정돼야"

글로벌 본사가 한국에 대한 중장기 투자를 최종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지속 가능한 '제도적 기반(Framework conditions)'이다. 제약사들은 특히 한국 시장의 규제적·재정적 안정성과 더불어 신약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보건의료 지출을 단순한 '비용'이 아닌 '사회적 부를 위한 가치 있는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장이나 제조 설비 같은 유형 자산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 및 임상시험 역량, 우수한 연구 인력 양성, 글로벌 노하우 전수 등 '무형 자산(Intangible assets)'에 대한 기여도를 적극 인정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혁신 신약이 환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치를 적절히 반영하는 지속 가능한 약가 및 급여(Pricing & Reimbursement) 시스템과 강력한 지식재산권(IP) 보호가 장기 투자를 이끄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약가 제도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네릭(복제약)에 대한 약가 혜택뿐만 아니라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절한 약가 인정이 필요하다"며 "이는 다국적 기업이 신약을 국내에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신약 개발 동기를 촉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다른 대관업무 관계자는 '약가 역전 현상’의 심화에 대해 언급하며 "이번 약가제도 개편에 따라 제네릭(복제약)의 기본 산정률은 기존 53.55%에서 45%로 인하되지만,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의 제네릭은 60%의 가산 약가를 적용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 인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없는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특허 만료 후 약가가 45% 수준으로 떨어지는 반면, 인증을 획득한 국내 제약사의 제네릭은 60%의 가격을 보장받는다. 결과적으로 제네릭이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비싸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제네릭 약가 현실화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산업이 제네릭 중심의 구조에 안주하게 만들어 전반적인 질적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혁신 생태계의 최종 목적지가 '환자 치료'인 만큼,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업계 한 약가담당자는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노력으로 글로벌 혁신 신약이 탄생하는 만큼, 제도적 환경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며 "특히 중증·희귀질환 분야에서 혁신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보다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평가 체계를 마련해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책적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