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여담] LG의 원 헬스(One Health)

이중백 대외협력파트장(LG화학 생명과학본부)

2026-05-29     뉴스더보이스

1980년대 국민학교 하교 길, 교문 앞 화단은 아이들의 천연 간식 창고였다. 빨갛게 피어난 사루비아 꽃 한 송이를 쏙 뽑아 끝부분을 입에 물면, 투명하고 달콤한 꿀 한 방울이 혀끝을 적셨다. 그 시절 우리에게 자연은 일상의 달콤함을 나누는 다정한 이웃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달콤함의 원천이자 생태계의 화가(畵家)인 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꿀벌은 지구 식물 종의 80% 이상을 수분(受粉)시키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와 잦은 산불, 살충제 남용으로 인해 벌들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꿀을 못 먹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 식량 안보와 생태계 연쇄 붕괴를 의미한다. 이런 절박한 시점에 최근 LG그룹이 멸종 위기의 토종벌 400만 마리를 일궈내 생태계 복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LG의 이 같은 행보는 특히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이른바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이다. 인간의 건강이 동물과 환경의 건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패러다임은 제약 산업의 본질과 닿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약품 원료의 상당수가 천연물과 생물 자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 치료제 자원을 보존하는 일과 깊은 궤를 같이한다.

이미 발 빠른 기업들은 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HK이노엔이 멸종 위기종인 레서판다의 서식지를 복원하며 생물 다양성 확보에 앞장서고 있고,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AZ 포레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에 2억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기후 위기와 공중보건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이들에게 숲을 가꾸고 동물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인류 보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인간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월(蜜月·Honeymoon)’ 관계다. 꿀처럼 달콤했던 사루비아의 추억을 우리 후손들도 누리기 위해서는, 기업과 사회가 원 헬스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자연이 병들면 인류의 치료제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LG의 토종벌들이 윙윙거리며 우리 귓가에 전하고 있다.

* 이중백 LG화학 생명과학본부 대외협력파트장은 한국제약바이오헬스 정책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