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②] 희귀질환 신속등재 공감했지만…학계·업계-환자단체 시각차 뚜렷
학계 "평가체계 약화 우려" vs 환자·업계 "실제 치료기회 확대 우선"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공청회=패널토론] 정부가 추진하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제도를 두고 학계와 제약업계·환자단체 간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제도 취지인 환자 접근성 확대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학계는 평가체계 약화와 재정 부담 가능성을 우려한 반면 환자단체와 제약업계는 실제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치료 기회 확대와 대상 범위 확장을 강조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운영 과정에서 의견을 추가 수렴해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가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청회는 지난 3월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표된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 핵심 과제인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제도의 본격 도입을 앞두고 현장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동안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치료 효과를 단기간 내 충분히 검증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일반 신약과 동일한 평가 절차를 적용할 경우 실제 치료 현장에서 적시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반영해 건강보험 등재 소요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로 줄이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권병기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희귀질환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제에 보다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속등재 이후에도 면밀한 사후평가를 통해 급여 적정성을 점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며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 환자 부담을 낮추는 제도로 자리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복지부가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추진 방향을, 심평원이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각각 발표한 뒤 학계와 산업계, 환자단체 등이 참여한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학계 "속도보다 평가 체계 중요…가치평가 빠져선 안 돼"
학계에서는 신속등재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 방식이 평가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배은영 경상국립대 약대 교수는 “신속등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제시된 방법론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며 “외국은 절차 효율화로 시간을 단축하는데 우리는 평가 내용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후평가는 사전평가가 제대로 이뤄졌을 때 의미를 갖는다”며 “어떤 데이터가 불확실한지 사전에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후평가를 강조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우 울산의대 교수 역시 경제성평가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경제성평가는 환자에게 장벽을 만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공적 자원을 사용할 때 의약품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효능 자료뿐 아니라 실제 효과 자료까지 포함한 가치평가 구조가 계약 단계부터 명확히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나 보험자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업체 역시 임상자료와 실제 근거 자료를 충분히 공개하고 협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2인3각, 3인4각처럼 함께 움직여야 하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업계·환자단체 "실제 치료 기회가 핵심"
반면 제약업계와 환자단체는 신속등재 취지가 실제 환자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재호 한국노바티스 전무는 “위험분담제와 경제성평가 생략 등 여러 제도 도입으로 급여율은 높아졌지만 실제 허가 이후 환자가 급여로 사용하기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100일 신속등재는 이런 문제를 파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배경에서 나온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상 기준으로 보면 실제 포함될 희귀질환 치료제 수가 제한적일 수 있다”며 “사후관리 부담이 커질 경우 본사 입장에서는 투자 필요성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자단체는 보다 직접적으로 환자 관점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신속등재를 왜 하는 것인가. 결국 환자 치료가 목적 아니냐”며 “발표 자료 어디에서도 환자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총장은 “환자들은 새로운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치료제를 원한다”며 “급여가 돼도 연령 제한이나 재발 횟수 기준 등으로 실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치료제 사용은 그림의 떡이던 시절이 하루빨리 과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보험당국 "접근성과 지속가능성 균형"
보험당국은 신속등재가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김종봉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기존 식약처 허가 이후 급여평가와 약가협상으로 이어지던 순차 구조를 병행해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제를 보다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서도 “단순히 빠른 등재만이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 기반 위험분담제와 철저한 사후관리 체계를 통해 약효가 실제 입증됐을 때 보험 재정을 지급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신속등재가 기존 접근성 강화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형민 공단 신약관리부장은 “신속등재는 새롭게 갑자기 등장한 제도가 아니라 선별등재제도 이후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추진해온 위험분담제와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단은 평가 단계부터 제약사와 위험분담 조건과 재정영향 등을 사전 협의해 협상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단축해 왔다”며 “이번 제도는 급여평가와 협상을 더욱 간소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 공급”이라며 “환자 접근성이 빨라지는 만큼 제약사도 충분한 물량 확보와 공급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준혁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신속등재라는 표현 때문에 속도에만 매몰될 우려가 있지만 제도의 방점은 사후관리”라며 “시범사업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현장 의견을 수렴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