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 뺑뺑이, 제도가 산모 떠돌게 만든 것”…홍승권 원장 취임 한달 소회

공공정책수가 확대 필요성 강조…“삭감기관 아닌 필수의료 환경 만드는 기관 돼야” “행위량 아닌 자리 지키는 것에 보상”…분만·소아응급·중증외상 지원 필요성 제기

2026-05-15     최은택 기자

홍승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취임 한 달을 맞아 필수의료 위기와 공공정책수가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된 ‘분만실 뺑뺑이’ 사례를 언급하며 “산모가 떠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도가 산모를 떠돌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 원장은 지난 13일 임직원들에게 배포한 ‘취임 한 달, 심평원장으로서의 소회’에서 “업무보고를 받고 의약단체를 만나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하나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며, 한밤중 분만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산모 사례를 언급했다.

홍승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지난달 13일 원주 본원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는 현재의 분만의료 위기를 개별 병원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규정했다. 분만을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고, 야간에는 홀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데다 현행 수가체계가 위험과 책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병원들이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 분만 취급 의료기관 수가 10년 전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했다고도 설명했다.

“시장 외면한 영역, 공공정책수가로 보완해야”

홍 원장은 이 같은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정책수가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행위별수가제가 효율적인 체계이긴 하지만 시장 논리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다 보니 수익성이 낮고 위험 부담이 큰 영역에서 의료공급이 위축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분만, 소아응급, 중증외상, 야간 당직 등이 대표적 사례”라며 “공공정책수가는 행위량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에 보상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어 “야간에 분만실을 운영하는 것, 지역에서 소아응급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제도가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또 취임사에서 밝힌 ‘환자 건강성과와 의료가치 중심의 심사·평가 패러다임 전환’ 구상과 관련해서도 공공정책수가 확대가 핵심 과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행위 단위 적정성 관리를 넘어 환자의 건강성과와 의료가치 중심으로 심사·평가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공공정책수가 확대는 그 전환의 가장 절실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심평원, 과소보상·필수의료 공백 데이터로 증명해야”

홍 원장은 심평원이 단순 심사·삭감 기관을 넘어 필수의료 기반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그는 “심평원은 수가를 직접 결정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어떤 의료행위가 과소보상되고 있는지, 어떤 지역에서 필수의료 공급이 끊기고 있는지, 어떤 보상체계가 현장의 이탈을 가속시키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은 심평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고난도·고위험 수술 보상 항목 발굴, 지역별 필수의료 공급 실태 공개, 공공정책수가 성과 추적 등을 심평원의 역할로 제시했다. 특히 “삭감의 근거를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적정진료가 가능한 환경의 근거를 만드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심평원의 기준은 서류 아닌 국민 삶”

홍 원장은 마지막으로 “산모가 새벽에 전화 한 통으로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분만실이 가까이에 있는 나라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심평원의 기준은 서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만실 앞에서 거절당하는 산모가 없는 것, 그것이 제가 말한 기준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라며 임직원들에게 변화에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