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수치에 가로막힌 치료권”… 혈우병 환자들, 실질적 제도 개선 촉구

인하대 박정아 교수 “장애 막는 예방요법, 건강권 확보의 출발점” 정부 “산정특례 본인부담 인하 검토… 신약 신속 등재 추진”

2026-04-09     권소희 기자

혈우병 환자들이 경직된 급여 기준과 경제적 장벽으로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실질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2026 세계혈우병의 날’(4월 17일)을 맞아 한국코헴회는 8일 국회에서 ‘혈우병 환자의 건강권 보장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제도 개선 정책 토론회’를 주관했다. 이번 토론회는 이개호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인하대학교 소아청소년과 박정아 교수가 8일 국회에서 열린 ‘혈우병 환자의 건강권 보장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제도 개선 정책 토론회’에서 희귀질환 지원 강화 정책과 혈우병 환자들의 건강권 목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코헴회가 주관, 이개호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관절 장애 막는 예방요법, 소아기부터 시작해야”

발제자로 나선 인하대학교 소아청소년과 박정아 교수는 혈우병 환자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으로 ‘적극적 예방요법’을 꼽았다.

박 교수는 “중증 혈우병 환자의 자발적 출혈 중 70~80%가 관절에서 발생하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활막염과 연골 퇴화를 유발해 ‘혈우병성 관절병증’이라는 영구적 장애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어 “모든 환자의 기능적 완치와 건강 형평성 달성을 위해서는 출생 직후에 가까운 시점부터 예방요법을 시작해야 한다”며 세계혈우연맹(WFH) 권고를 인용했다. 또한 ▲가정 내 자가치료 환경 조성 ▲혈우병 치료센터 중심의 통합 관리 ▲유전자 치료 등 최신 치료 옵션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급여 기준 개선 시급”

패널토론에서 이남일 한국코헴회 사무국장은 현행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 기준으로 인해 치료가 중단되고, 이는 결국 합병증과 장애 누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며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안정적인 치료를 위해 본인부담금 폐지와 부양의무자 기준의 조속한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혈우병 치료제의 급여 기준과 관련해 “식약처 허가 용량에 비해 급여 용량이 부족해 충분한 예방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0.1% 수치 차이로 중등증으로 분류된 환자들도 실제로는 중증 수준의 출혈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급여 기준은 단순 수치가 아닌 실제 출혈 양상과 임상 증상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확한 환자 통계와 질환 실태에 대한 체계적 관리 없이는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어렵다”며 국가 차원의 혈우병 환자 등록·관리 시스템 구축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사무국장은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문제도 짚었다. 그는 “현장에서는 치료제가 건강보험에 등재되기까지 평균 3년가량 소요되는 간극이 존재한다”며 “희귀질환 환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과 산정특례 제도 개선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방 중심 치료, 환자 삶 지키는 핵심”

김승근 헤모필리아라이프 대표는 혈우병이 환자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청소년기부터 관절 손상이 시작돼 학업과 사회적 발달이 저해되고, 30대 이후에는 장애 누적으로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다”며 “40~50대에 이르면 환자 본인의 심리적 체념과 가족의 돌봄 부담이 겹치며 삶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출혈 이후 지혈에 의존하는 소극적 치료로는 반복 출혈과 관절 손상을 막기 어렵다”며 “출혈을 사전에 차단하는 적극적 예방 치료만이 관절 기능을 보존하고, 환자가 학업과 취업, 사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기 예방 치료는 단순한 의료비 지출이 아니라 향후 수술, 입원, 재활, 복지 비용을 줄이는 장기적 사회 투자”라며 “치료가 지연될수록 국가와 사회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정책 방향과 관련해 “혈우병은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인 만큼 단기 지원을 넘어선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치료제 급여 범위를 식약처 허가 수준에 맞추고, 치료 횟수 제한 등 급여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 치료제에 대한 신속한 급여 검토와 안정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 치료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환자·가족 대상 심리·사회적 지원 확대 ▲장기 케어 로드맵 수립 등을 제안했다.

복지부·심평원 “본인부담 인하·신속 등재 제도화 추진”

정부 측은 환자들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며 개선 의지를 밝혔다.

정귀영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희귀·중증 난치질환자의 본인부담률(현행 10%)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검토 중”이라며 “1년 내 가시적인 성과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숙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약등재부 부장은 “식약처 허가 용량과 급여 기준 간 괴리에 대한 현장의 우려를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다”며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시범사업을 정교화하고, 유전자 치료제 등 혁신 신약 평가 체계를 고도화해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