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신속등재 100일, 같은 한계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은영 이사(한국환자단체연합회)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의 핵심 중 하나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절차를 단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급여기준 설정(기존 최대 150일→1개월), 약가·총액제한액·공급의무 협상(기존 최대 60일→1개월), 건정심 심의(1개월)로 절차를 간소화해 전체 소요기간을 현행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희귀·중증질환 환자 입장에서 이러한 방향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 가능성 자체가 줄어드는 질환에서 신속한 접근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책의 취지가 아니라 이 일정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운영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다.
정부는 이미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을 통해 등재 기간 단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환자가 체감한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1차 시범사업 대상이었던 콰지바주와 빌베이캡슐도 등재까지 1년 이상이 걸렸고, 2차 시범사업은 시작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등재된 약제가 없다.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윈레브에어’는 그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약제는 ‘허가–평가–협상 병행 2차 시범사업’ 대상 약제로 선정되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급여 절차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00일 단축 정책이 기존 시범사업과 같은 운영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결과도 달라지기 어렵다. 제도 이름과 목표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기준 설정 지연과 자료 보완 반복, 불투명한 절차 운영이 그대로라면 환자가 실제로 기다리는 시간은 줄지 않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최근 4년간 건정심 자료를 기초로 분석한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을 보면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적용까지 평균 2년 11개월이 걸린다. 일부 사례에서는 3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처럼 긴 등재 기간 속에서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절차의 기간이 아니라 실제로 치료에 도달하는 시점이다.
결국 이번 정책의 성패는 ‘100일’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다. 핵심은 기준 설정 단계와 자료 보완 과정을 얼마나 신속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느냐다. 제약사는 급여 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신속하고 충분하게 제출해야 하고 정부 역시 기준 설정과 평가·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희귀질환 치료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속한 등재와 함께 등재 이후 치료 효과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후평가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부 역시 신속등재된 치료제에 대해 실사용자료(RWE)를 활용한 사후평가와 급여·약가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신속등재 정책은 이미 충분히 선언되었다. 이제는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