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 덮친 중동發 충격에 "환자는 어쩌라고"..주사기·수액세트 ‘공급망 경보’

나프타 수급 차질→플라스틱 원료 부족→의료소모품 연쇄 불안 구조화 소아 시럽병부터 수액백·주사기까지…현장 “이번 주 넘기기 어렵다” 정부, 6개 품목 집중관리·허가 단축·수가 조정 검토…단기 처방 총동원 전문가 “에너지·보건 연결된 복합위기…공급망 다변화 없인 반복될 것”

2026-04-07     이창진 기자

 

이란 전쟁 장기화가 의료현장까지 덮치면서 보건당국이 의료소모품 수급불안 해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이 6일 서울 중구 소재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제2차 회의 및 의료제품 수급안정 협력 선언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중동 전쟁 여파가 국내 의료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수액세트와 주사기, 시럽병 등 필수 의료소모품에서 수급 불안 조짐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보건당국이 긴급 대응에 나섰다.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 국민인 환자 피해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어서 상황 악화가 더욱 우려될 수밖에 없다. 

7일 보건당국과 산업계에 따르면, 의료품까지 불똥이 튄 이번 중동 사태의 핵심은 역시 나프타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공급이 흔들리면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기초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곧바로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 원료 부족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들 소재가 단순 산업재가 아니라 수액백, 시럽병, 점안제 용기, 주사기 부품 등 의료제품의 필수 구성요소라는 점이다.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 단계에서 시작된 충격이 의료현장까지 전이된 ‘연쇄 공급망 위기’라는 점에서 사태의 성격은 더욱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PE는 수액제 포장재의 핵심 소재로, 원료 수급이 흔들릴 경우 의료제품 공급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경기 화성 동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혜진 약사는 “소아과 약국 살려주세요. 시럽병이 품절입니다”라고 최근 SNS에 최근 상황을 호소글로 올리며 “기존에는 2개씩 제공하던 시럽병을 1개로 줄였고,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혀 최근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아 환자의 경우 알약 대신 시럽제 의존도가 높아 시럽병 부족은 곧 치료 접근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약국 약사 B씨는 “시간 날 때마다 업체에 전화하고 있지만 수급 상황이 계속 불안하다”며 “환자가 하루 100명 이상 방문하는데 재고 예측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일부 병·의원에서는 가격 상승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유통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병원 현장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 간호사 B씨는 “주사기와 수액세트를 주문하려고 해도 일부 품목은 이미 품절로 표시된다”며 “현재 보유 물량 외에는 추가 주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혈액투석 환자나 중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수액 관련 제품의 공급 차질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환자 안전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정부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수액제 포장재, 수액세트, 주사기, 주사침, 점안제 포장재, 혈액투석제 등 6개 품목을 ‘집중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생산·유통·재고를 일일 단위로 점검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 지난 6일 서울 중구 소재 콘퍼런스하우스에서 보건의약단체 및 유관부처와 함께 중동전쟁으로 인한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의료제품의 수급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중동전쟁 대응 보건의약단체 제2차 회의 및 의료제품 수급안정 협력 선언식을 개최하고, 집중 모니터링에 나서고 있다. 

이 자리에는 보건의료 분야 12개 의약단체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부처 등이 모두 참석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제품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포장재 변경 등 허가 절차를 최대한 단축해 기업들이 신속하게 대체 생산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제품이 끊기지 않도록 규제 측면에서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약처는 한시적으로 포장재 변경 허가 기간을 대폭 줄이고, 의료기기 인증 절차도 신속 처리 체계로 전환했다.

아울러 정부는 시장 교란 행위 차단에도 나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심으로 신고센터를 운영해 사재기나 매점매석 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으며, 치료재료 가격 상승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 조정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불안 심리로 인한 과다 구매가 오히려 공급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며 “의료기관과 유통업계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에너지-산업-보건이 연결된 복합위기’로 진단한다. 한 보건산업 전문가는 “원유와 나프타 같은 기초 원료가 흔들리면 의료소모품까지 영향을 받는 구조가 이미 고착화돼 있다”며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시적 품절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의존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변수다. 중동 지역 긴장이 지속될 경우 원료 가격 변동성과 물류 리스크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어 의료제품 공급 불안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원료 공급선 다변화, 전략 비축, 국내 생산 기반 강화 등 중장기 대응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추가적인 인프라 공격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료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공급망을 관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집중관리와 규제 완화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의존 구조와 의료소모품 공급 체계를 동시에 재설계하지 않는 한 유사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