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형사특례 법안 논란 확산…환자단체 “공소제기 제한 위헌 소지”

국회 법사위 심의 앞두고 반발…“손해배상 조건 형사면책, 피해자 권리 침해”

2026-03-30     최은택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피해자의 권리 침해와 위헌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는 양상이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사고 형사특례를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환자 동의 없는 형사처벌 면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관련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이 개정안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책임을 감면하거나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인의 형사 부담을 줄여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진=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손해배상으로 공소제기 차단…법체계에도 없는 특례”

단체들이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검사의 공소제기를 금지하는 형사특례 조항이다. 이들은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에서 손해배상만으로 형사책임 자체를 면제하는 제도는 우리 법체계에 유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통사고 분야에서도 중상해 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제한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는 점을 들어, 의료사고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인에게만 형사면책 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으며, 충분한 설명이나 과실 인정 없이도 배상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구조가 환자 안전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입법 속도전·범위 확대…절차·내용 모두 문제”

입법 과정과 적용 범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단체들은 “공청회나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발의 후 약 두 달 만에 법사위 심의 단계까지 진행됐다”며 절차적 정당성 부족을 지적했다.

또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를 ‘중증’과 ‘등’이라는 표현으로 폭넓게 규정해 향후 적용 대상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 등 실제 기피가 발생하는 분야로 법률에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 조항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책임보험이 의무화되더라도 보장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피해자 보호 장치는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사고 형사특례를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환자 동의 없는 형사처벌 면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관련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사진=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의 증언도 이어졌다. 뇌 손상으로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어머니는 “병원은 의료과실을 부인한 채 충분한 설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진실을 알고자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절차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이 시행되면 손해배상만으로 형사책임이 면제될 수 있어 피해자는 배상을 받을 것인지, 형사책임을 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진실을 밝힐 권리까지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단체들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의 법률 명확화 ▲공소제기 금지 형사특례 조항 삭제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유지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단순 과실 의료사고의 경우 조정·중재를 통한 배상 시 반의사불벌 적용이나 법원의 형 감경 수준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해당 개정안은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로, 법제사법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단체들은 “환자의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가 걸린 사안인 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국회의 신중한 판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