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구조부터 바꿔야 건보 버틴다”…성분명 처방·참조가격제·입찰제 제안
나영균 배재대 교수, 국회 토론회서 약제비 구조 개혁안 발표 “고가 제네릭·상품명 처방·다제처방 재정압박…3단계 개혁 필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머물러 있는 국내 약가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성분명 처방 의무화와 참조가격제 도입, 제네릭 경쟁입찰제 도입을 통해 약제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영균 배재대학교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국회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약제비 구조의 개혁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서영석·장종태·김윤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하고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주관했다.
나 교수는 한국의 약제비 지출 구조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지만 정작 혁신 신약 접근성은 낮은 비효율적 구조라고 진단했다.
나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약제비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969달러로 OECD 3위 수준이며, 건강보험 진료비 대비 약품비 비중도 24.15%(약 26조8000억 원)에 달한다. 반면 글로벌 신약의 1년 내 국내 도입률은 5% 수준에 그쳐 약제비 지출 규모에 비해 신약 접근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 교수는 특히 한국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 구조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평균 53.55% 수준으로 OECD 평균인 25%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가 만료된 이후 가격 경쟁을 통해 약가가 크게 낮아지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특허 만료 이후에도 시장 규모가 오히려 확대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40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이 더 낮은 제네릭은 13개로 전체의 5.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구조의 배경에는 상품명 처방 관행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 교수는 “의사가 성분명이 아닌 특정 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관행 때문에 약사가 동일 성분의 더 저렴한 의약품으로 변경하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 제네릭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대체조제율은 0.79% 수준으로 미국(91.0%), 프랑스(88.4%)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사실상 대체조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가 제약사의 마케팅 경쟁을 심화시키고 제네릭 가격 인하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래 이용 증가와 다제처방 문제도 약제비 상승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외래방문 횟수는 18회로 OECD 평균인 6.5회의 약 2.8배 수준이다. 또 75세 이상 고령층 가운데 5개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비율은 64.2%로 OECD 평균(48.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환자도 약 171만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 교수는 “잦은 외래 방문이 과다한 약 처방으로 이어지고 대체조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결합되면서 약제비 증가와 약물 부작용 위험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약제비 구조 개혁을 위한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성분명 처방 의무화다. 처방전에 상품명이 아니라 국제일반명(INN)을 기재하도록 하고,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도 성분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약사가 동일 성분·동일 함량 범위 안에서 가장 저렴한 의약품으로 대체조제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교수는 이를 통해 대체조제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경우 연간 약 7조9000억 원, 전체 약품비의 약 29% 수준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두 번째 단계로는 참조가격제 도입을 제안했다.
참조가격제는 동일 성분이나 동일 치료 효과를 가진 의약품을 묶어 보험이 보장하는 기준 가격을 설정하고, 환자가 더 비싼 약을 선택할 경우 차액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추가로 30~40% 낮추고 연간 약 2조6000억 원의 약품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 번째 단계로는 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하는 제네릭 경쟁입찰제 도입이 제시됐다.
동일 성분 의약품에 대해 공개 경쟁입찰을 실시하고 최저가 상위 5개 제품만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나 교수는 현재처럼 동일 성분 제네릭이 수십 개 등재돼 있으면서도 가격이 거의 비슷한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경쟁이 어렵다며 입찰제를 통해 가격 중심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3단계 개혁이 모두 시행될 경우 현재 약 27조 원 규모의 약품비를 약 13조5000억 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는 “성분명 처방 의무화로 약 7조9000억 원, 참조가격제 도입으로 약 2조6000억 원, 경쟁입찰제를 통해 약 3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총 13조5000억 원 규모의 재정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혁신 신약 급여 확대에 재투자하면 현재 낮은 신약 접근성 문제도 함께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제네릭 약가를 낮추는 것은 의료의 질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치료 효과를 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약제비 구조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