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4일분의 사투… ‘지정헌혈’로 내몰리는 혈액 가뭄 현장 가다
22일 기준 O형 보유량 3.4일 ‘비상’…적정치 5일분 크게 밑돌아 한파·독감 유행에 헌혈 참여 감소, 이색 기념품 등 참여 독려도
[현장=헌혈의 집] 기록적인 한파와 독감 유행이 겹친 2026년 1월, 국내 혈액 수급에 다시 한 번 빨간불이 켜졌다. 계절적 요인을 넘어 헌혈 참여 감소와 인구 구조 변화가 맞물리며 의료 현장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 O형 보유량 3.4일…‘주의’ 단계 진입 코앞
22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적혈구 제제 보유량은 하루 평균 소요량을 기준으로 약 4.1일분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적정 수준으로 분류되는 5일분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며, 혈액 수급 위기 ‘관심’ 단계에 해당한다.
혈액형별로는 O형이 약 3.4일분으로 가장 부족한 수준을 보였으며, A형과 AB형도 적정치에 못 미쳤다. 반면 B형만이 비교적 안정적인 재고량이 유지되고 있다.
■ “예년보다 방문객 줄어”…헌혈의 집 현장 체감
취재진이 찾은 헌혈의 집은 평일 낮 시간대인데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헌혈의 집 한 현장 근무자는 예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방문객 수가 체감상 줄어든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예전보다 헌혈에 나서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분명히 느껴진다”며, "대기 시간이 짧아진 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독감 유행 겹친 겨울철…헌혈 가능자 감소
겨울철 특수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장 근무자는 “환절기나 동절기에는 독감이나 감기 등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헌혈이 가능한 상태가 아닐 수 있어서 헌혈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매년 1~2월은 방학을 맞은 고등학생·대학생 단체 헌혈이 줄어드는 계절적 요인과도 맞물려 헌혈 참여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 대학병원 ‘지정헌혈’ 의뢰 급증…의료 현장의 현실
혈액 보유량이 빠듯해지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특정 환자를 위한 ‘지정헌혈’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헌혈의 집 현장 근무자는 “최근 대학병원에서 특정 환자를 위한 지정헌혈 문의가 이전보다 늘어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필요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의료기관들의 수요가 반영된 움직임이다.
■ 참여 독려 위한 이색 시도도
헌혈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헌혈의 집에서는 젊은 층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념품 제공 등을 통해 참여 문턱을 낮추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최근에는 MZ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두바이 쫀득 쿠키’를 기념품으로 내건 곳도 등장했다.
본지 기자가 직접 헌혈에 참여해본 결과, 사전 문진과 검사, 채혈 과정은 전반적으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진행됐다. 채혈 과정에서 큰 통증이나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헌혈 후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만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헌혈의 집 관계자는 “한 번의 헌혈로 여러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가장 안전하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인 만큼 망설이고 있다면 용기를 내 참여해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청년층 헌혈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수혈 수요 증가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국가 차원의 혈액 수급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보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