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인 기본권 침해” vs 시민사회 “지역의료 붕괴 더 못 기다려”
이수진 의원 국립의전원 설립법 두고 또 입장 충돌
여당 의원이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법안을 둘러싼 의사단체와 시민사회·환자단체의 입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와 의학교육 훼손을 이유로 법안에 반대하고 나섰고, 시민사회와 환자단체는 지역·필수·공공의료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신속한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지난 9일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사 인력을 국가 책임으로 양성하기 위해 국립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5일 법률안에 따르면 국립의학전문대학원은 공공의료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형태의 기관으로 설립된다. 총장과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회가 구성되며, 총장은 이사회 선임 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명된다. 국가는 설립비와 운영비, 경상적 경비를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법안은 졸업 후 의무복무를 핵심으로 한다.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의사면허 취득 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5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과 면허정지 처분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법안이 공공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의료 인력을 국가가 장기간 강제 배치·관리하는 제도라며,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의학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15년 의무복무 규정이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의 수련과 군 복무 기간을 고려할 경우 사실상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국가가 지정한 지역과 기관에서 근무를 강제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강조했다.
의학교육의 자주성과 독립성 훼손 우려도 제기했다. 의학교육이 교육부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총장 승인과 예산 승인, 지도·감독 권한을 부여한 것은 대학 운영과 교육 내용에 대한 행정 권력의 직접 개입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 부담과 의대 추가 신설 문제도 비판했다. 의협은 국립의전원 설립과 운영에 투입될 재정을 기존 공공의료기관의 처우 개선과 인프라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교수 확보와 교육병원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의과대학 신설은 부적절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반면 시민사회와 환자단체는 의사단체의 반대 논리와는 달리, 지역·필수·공공의료 붕괴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의료인력 수급 논쟁이 장기화되는 동안 지역의료 공백이 확대되고 있다며, 국립의전문대학원 설립 법제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연대회의는 현재 지역에서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을 가리지 않고 의사 인력 부족으로 진료 축소와 병상 감축이 반복되고 있으며, 응급·분만·외상·중환자 등 필수의료 영역의 불안정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병상을 줄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대회의는 일부 의사단체가 의료인력 수급추계 논의를 무력화하고, 위원회 자체를 문제 삼아 감사 청구까지 거론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협의 주체의 모습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를 ‘분석에 의한 마비’로 규정하며, 직역의 이해를 앞세워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대회의는 의료가 시장에만 맡겨질 수 없는 필수 공공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며, 의사 인력 수급 불균형은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국립의전원은 기존 의대 정원 논쟁을 넘어 지역·필수·공공의료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양성·공급하는 공공적 통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무복무에 대해서도 시각 차이가 뚜렷하다. 연대회의는 이를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공적 재정과 교육 기회가 투입되는 만큼 공공적 책무가 결합되는 사회적 계약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처우와 교육, 경력 발전, 정주 지원을 포함한 지속 가능한 설계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의전원 설립과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제시했다. 수련을 병원 경영 논리에 맡길수록 필수과와 지역 수련이 취약해지고 있다며, 공공 수련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립의전원 설립법을 둘러싸고 의사단체는 기본권 침해와 교육 훼손을, 시민사회와 환자단체는 지역의료 붕괴와 국가 책임을 각각 앞세우며 정면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 같은 인식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