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장애’ 도입 환영…중증도 중심 당뇨병 정책 전환 필요”
당뇨와건강 환우회 "1·2형 구분 없이 중증 당뇨병 포용한 첫 제도" 3월 재택의료 개선안에 중증 2형당뇨병 포함 촉구
보건복지부가 당뇨병 환자의 췌장 기능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췌장장애’ 판정 기준을 새로 도입하자 환자단체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환자단체는 이번 제도 개편이 단순히 장애 판정 기준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진단명 중심이었던 당뇨병 정책을 중증도 중심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뇨와건강 환우회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장애정도판정기준」을 수정해 1형·2형 당뇨병 구분 없이 췌장 기능 장애의 중증도를 기준으로 장애를 판정하도록 한 제도 개편을 적극 환영한다고 14일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시행령을 공포한 데 이어 같은 달 31일 장애정도판정기준을 개정했다. 개정된 기준에 따르면 인슐린 분비 능력을 나타내는 씨펩타이드(C-peptide) 수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다회 인슐린 치료를 받는 중증 당뇨병 환자도 췌장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으로 당뇨병의 유형과 관계없이 실제 췌장 기능 손상 정도에 따라 장애 판정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췌장장애가 사실상 1형 당뇨병 환자나 췌장 이식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번 기준 개정으로 2형 당뇨병 환자라도 질환이 악화돼 회복 불가능한 중증 인슐린 결핍 상태에 이른 경우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환자단체는 이러한 변화가 당뇨병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진단명이 아닌 중증도 중심 정책 첫 사례”
환우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환자들과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진단명이 아닌 중증도 중심의 당뇨병 정책’이 국가 제도에 처음 반영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당뇨병은 발병 원인이나 유형보다 환자가 실제로 겪는 췌장 기능 장애의 정도가 치료와 관리에서 훨씬 중요하다”며 “이번 기준 개정은 이러한 현실을 정책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환우회는 특히 당뇨병 환자들이 겪어온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중증 2형 당뇨병 환자들은 췌장 기능이 크게 손상돼 생존을 위해 다회 인슐린 투여가 필수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2형’이라는 진단명 때문에 여러 지원 정책에서 배제돼 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는 것이 현재 시행 중인 ‘1형당뇨병 재택의료 시범사업’이다. 이 사업은 인슐린 의존 환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 재택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지만 대상 환자를 1형 당뇨병으로 한정하고 있어 중증 2형 당뇨병 환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환우회는 “실제로는 다회 인슐린 투여가 필요한 중증 2형 당뇨병 환자들도 1형 당뇨병 환자와 동일한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진단명만으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제도적 불합리”라고 지적했다.
“재택의료·혈당관리기기 지원도 확대해야”
환자단체는 이번 췌장장애 기준 도입을 계기로 당뇨병 관련 정책 전반이 중증도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택의료 지원 대상 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환우회는 “현재 1형 당뇨병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재택의료 시범사업 대상을 다회 인슐린 투여가 필요한 중증 2형 당뇨병 환자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가 올해 3월 마련할 예정인 재택의료 종합 개선 방안에 이러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췌장장애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췌장 기능 손상의 결과라는 점을 들어 장애 판정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우회는 “다회 인슐린 치료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재택의료 지원이 이뤄진다면 췌장 기능 악화와 합병증 진행을 늦출 수 있다”며 “적절한 관리가 이뤄질 경우 장애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1형 당뇨병 환자에게만 지원되는 연속혈당측정기(CGM) 등 당뇨병 관리기기 지원 역시 중증도 기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연구에서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은 관리기기가 재택의료와 결합될 경우 인슐린 치료 효과와 혈당 조절 능력이 크게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염동식 당뇨와건강 환우회 대표는 “이번 췌장장애 기준 도입은 중증도 중심의 당뇨병 정책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앞으로 1형과 2형 구분 없이 모든 중증 당뇨병 환자가 차별 없이 치료와 관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2003년 설립된 당뇨와건강 환우회는 약 3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전국 6개 지역에서 정기 모임과 당뇨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환우회는 지난 20여 년 동안 당뇨병 환자의 권익 보호와 질환 관리 교육, 정책 개선 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